리스본 파두의 전통과 시적인 향기가 공존하는 카치아 게헤이루의 2009년 새 앨범 'Fado'.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2002년 데뷔작 'Fado Maior'의 커다란 성공 이후 포루투칼 파두를 대표하는 최고의 여성싱어로 자리매김한 그녀의 통산 4번째 정규앨범.
열정적이고도 지적인 아름다움으로 사우다드를 표현하는 카치아 게헤이루의 파두에는 분명 그녀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한편의 아름다운 시와도 같은 'Ponham Flores na Mesa(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꽃)', 'Mundo(세상)을 비롯하여 샤를 아즈나부르(Charles Aznavour)가 리스본에 대한 애정을 담은 노래 'Lisboa(리스본)' 등 14곡의 파두 작품이 수록.
- 앨범해설
항구 도시 리스본의 음악, 파두(Fado)
파두(Fado)는 서유럽의 끝자락에서 대서양의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는 항구 도시 리스본에서 태어난 음악이다. 파두의 여신으로 불리며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했던 아말리아 호드리게스(Amalia Rodrigues)에 의해 세계에 알려졌던 이 음악은 이제 월드 뮤직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음악팬들에게 성큼 다가와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 새로운 화두가 되어 온 월드 뮤직은 음악 이면에 담긴 많은 이야기와 인간 본연의 감성에 호소하는 놀라운 흡입력을 통해 이제는 하나의 음악 장르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월드 뮤직 속 대부분의 음악이 그렇듯 파두 역시 역사와 문화적인 배경 속에서 포르투갈 사람들만의 고유한 정서를 담고 발전해 왔다.
파두의 기원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으며, 그것들은 대부분 역사를 통해 드러난 것들이다. 8세기에서 12세기에 걸친 무어인의 지배와 15세기에 본격적으로 바다로 진출하기 시작했던 대항해 시대의 시작은 파두의 기원과 정서적인 부분의 형성에 깊은 관련이 있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포르투갈은 지중해, 북서유럽, 아프리카를 잇는 해상 지리조건 때문에 로마의 속주 국가이기도 했고, 특히 오랜 기간 동안 무어인들의 지배를 받기도 했다. 무어인의 지배를 받는 동안, 아랍적인 숙명관이 담긴 그들의 노래로부터 파두가 기원했다는 설은 파두가 지닌 어두운 내면의 표현과 무관하지 않다. 파두에서 나타나는 어둡고 경건한 분위기, 그리고 한 음을 길게 늘이면서 꺾는 창법 등이 모두 아랍의 영향을 받은 흔적들이다. 바다를 통해 신대륙을 개척해 나갔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파두의 기원설은 좀 더 구체적이다. 1800년 전후에 브라질에서 유행했던 도시풍의 감상적인 노래 '모디냐(modinha)'와 아프리카의 '룬둠(lundum)'이라는 노래가 긴 항해에서 돌아온 사람들에 의해 전해져 파두의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은 한 때 스페인과 함께 해양대국으로 명성을 떨치며 남미 대륙에서 가장 면적이 큰 나라인 브라질을 비롯해 아프리카 몇 몇 나라들을 식민 지배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포르투갈의 남자들이 아프리카와 신대륙으로 길고 긴 항해를 떠났다. 바다로 떠난 남자들의 고국에 대한 향수와, 남아 있는 여인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감내해야만 했던 그리움. 이로 인해 항구 도시인 리스본의 서민들은 늘 그늘진 삶 속에 살아야만 했다. 새로운 세계로의 진출로였던 바다는 삶의 동반자이자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포르투갈 사람들의 가슴 깊은 곳에 하나의 숙명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그들의 어두운 인생을 리스본의 언덕지구인 알파마(Alfama)에서 절절한 노래로 표현해 온 음악이 바로 파두이다. 파두라는 단어가 운명, 숙명을 뜻하는 '파툼(Fatum)'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도 포르투갈 사람들과 바다의 관계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이처럼 바다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운명론적인 인생관을 지닌 파두의 근간에는 '사우다드(Saudade)'라고 하는 포르투갈 사람들 특유의 정서가 중요하게 자리하고 있다. 사우다드는 흔히 그리움, 향수, 또는 강렬한 갈망 등으로 풀이되기도 하지만, 단순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이 아니다. 그 속에는 바다를 숙명처럼 여기고 살아온 포르투갈 사람들의 희로애락(喜怒哀樂)과 내면에 깃들어 있는 어두운 감정이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 파두 가수들은 사우다드를 감정의 밑바닥으로부터 끌어올려 토해내듯이 노래로 표현한다. 그리고 청중들 역시 이러한 파두 특유의 정서를 함께 공감하는 것이다.
리스본 파두의 전통에 접목된 지성미
아말리아 호드리게스가 세상을 떠난 후 2000년대에 들어와 여러 신세대 파두 가수들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마리자(Mariza), 크리스티나 브랑쿠(Cristina Branco), 카치아 게헤이루 등이 단연 돋보이는 인물들이다. 파두 가수들은 비슷한듯하면서도 저마다의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카치아 게헤이루 역시 기본적으로 걸출한 가창력을 겸비하고 특별한 음색과 분위기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가수이다. 특히 "현재 활동 중인 파두 가수들 가운데 가장 매혹적인 목소리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다소 굵고 열정적인 그녀의 음색은 특별하다. 또한 인위적인 기교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감정을 드라마틱하게 전달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1976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태어난 카치아 게헤이루는 생후 11개월이 되었을 때, 포르투갈 바로 앞에 위치한 아조레스 섬으로 이주했다. 십 대 때부터 노래에 재능을 보였지만 리스본으로 가 의과대학에 진학한 그녀가 파두 가수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고 한다. 박사 학위를 받은 기념으로 간 파두 하우스에서 친구들에게 떠밀려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고, 좌중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이 사건은 인생의 진로를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2000년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를 기념하는 큰 파두 경연대회에 출전해 명곡 'Barco Negro(검은 돛배)'를 열창하며 새롭고도 특별한 파두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이어 2001년에 발표한 대망의 데뷔 앨범 [Fado Maior(위대한 파두)]가 우리나라에도 국내 발매반으로 소개되었고, 2003년 [Nas M?os do Fado(파두의 손 안에)]와 2005년 [Todo ou Nada(모든 것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것)]까지 석 장의 앨범과 세계 곳곳의 수많은 무대를 통해 포르투갈의 음악 대사 중 한 명으로 찬사를 받아왔다.
데뷔 앨범 한 장만의 소개로 국내 애호가들에게도 남다른 인상을 주었던 그녀는 2006년 내한 공연을 다녀가기도 했다. 포르투갈 현지에서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와 너무나 닮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던 카치아 게헤이루의 노래하는 모습을 당시 함께 했던 관객들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비교적 큰 키에, 두 손을 허리 뒤에 받치고 상체와 목을 크게 뒤로 젖히면서 노래하는 장면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왜 발군의 가창력을 지닌 마리자나 지성미를 겸비한 크리스티나 브랑쿠와 함께 새로운 세대 파두의 주역으로 지목받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바로 그녀의 무대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른 파두 가수들과는 차별되는 굵은 목소리와 차분한 외모에서 감지되는 지적인 분위기로 가슴 속 밑바닥부터 끌어 올린 감정을 온 몸으로 토해내는 리스본 파두의 전통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카치아 게헤이루의 파두에는 분명 그녀만이 표현해 낼 수 있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신세대 파두 가수들 대부분은 창법이나 음악적인 내용 등 전통적인 근간을 유지하면서도 악기 편성의 변화를 통해 색다른 분위기 연출을 꾀하기도 한다. 하지만 카치아 게헤이루는 데뷔 앨범에서부터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들 속 거의 모든 곡에서 리스본 파두의 전형적인 악기 편성을 유지해 왔다. 네 번째 앨범 [Fado] 역시 특유의 청승맞은 울림을 가진 포르투갈 기타(Guitarra Portuguesa)와 기타, 베이스의 반주로 노래하고 있다. 앨범 제목을 Fado로 한 것도 전통적인 리스본 파두에 음악적인 시선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카치아 게헤이루는 아말리아 호드리게스가 노래했던 곡들을 중심으로 했던 데뷔 앨범과 달리 이후의 앨범들에서는 특히 노랫말을 중요시하며 시(詩)에 선율을 붙인 곡들을 다수 수록하고 있다. 이번 앨범의 수록곡들 중에도 'Ponham Flores na Mesa(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꽃)', 'Mundo(세상)' 등이 시인이 쓴 시를 노랫말로 하고 있으며, 'A Voz da Poesia(시(詩)의 목소리)'의 노랫말은 카치아 게헤이루 자신이 직접 쓴 시이기도 하다. 열세 번 째 트랙인 'Lisboa(리스본)'은 샹송계의 보헤미안으로 불렸던 샤를 아즈나부르(Charles Aznavour)가 리스본에 대한 애정을 담은 노래로 파두의 틀 안에서 프랑스어로 노래하고 있는 이색적인 곡이다. 그리고 아말리아 호드리게스가 노래해 유명해 진 명곡 'Eu Queria Cantar-Te um Fado(나는 노래하길 원했네-그대, 파두를)'을 뛰어난 감정 표현을 담아 열창하면서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리스본 파두의 전통과 시적인 향기가 공존하는 카치아 게헤이루의 새 앨범 [Fado]는, 국내에 소개되었던 데뷔 앨범에서 그녀만의 매력을 발견한 애호가라면 또 한 번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열정적이고도 지적인 아름다움으로 사우다드를 표현하는 보기 드문 파두 가수이다. 카치아 게헤이루는 현재 파두 가수와 의사라는 두 가지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노래하고,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의사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