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은 파리, '운디드플라이(wounded fly)' 의 도시 생존기
몸도 마음도 지쳐버린 퇴근길, 버스에 올라탄다.
문득 내다본 창 밖 하늘, 별인가 황홀감에 눈을 비벼보니,
고층 아파트 발코니의 샛노란 불빛에 넋이 나가있었다.
사실, 바라는 건 단지 '안전하고 밝은 장소'일 뿐이었는데.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에게 '안전과 빛'은
애시당초 포기한, 가능하다면 이루고픈 물리적인 '꿈'인지 오래이고,
밟히듯 흔한 아파트 불빛마저 황홀한 별이 되어버렸다.
'안전과 빛'은 '불안과 어둠'이 존재해야만 온전한 의미를 획득하는 법.
상처입은 파리 운디드플라이는 대다수가 되어버린 '불안과 어둠'의 곁에서
닿을 수 없는 '꿈'이 되어 버린 '안전과 빛'을 꿈꾸며 희망없는 희망가를 노래한다.
운디드플라이는 1998년 결성되어, 1990년대 후반 한국 모던락의 성지 ‘클럽 빵’과 함께 소박하지만 빛나던 순간들을 함께했다. 하지만 2003년 정규 1집 [Between]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고 6년째 되는 해인 2009년 9월, 긴 침묵을 깨고 정규 2집을 발매한다.
때려 잡히다 만 파리도 아니고, 밴드명이 글렀다는 악평도 많았으나, 끝내 운디드플라이의 이름을 버리지 못하고 고집스레 돌아온 원년멤버 김희석과 이후 ‘노네임써’에서 만나 뜻을 같이한 장정아가 2008년 5월 의기투합하면서 운디드플라이는 2집 준비를 시작되었다. 그 해 9월 윤갑열(윈디시티)이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로 합류, 그들은 서로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며 영등포와 수원에 위치한 애간장스튜디오와 파이어볼스튜디오를 오가며 녹음을 개시한 지 1년 만에야 정규 2집 앨범 [Safety N Light]를 완성한다.
장정아의 드럼이 울리는 한국적이고 독특한 그루브와 좌우를 어지럽게 넘나들며 신경질적인 사운드를 뿜어대는 김희석의 기타, 차갑고 투정스런 미완의 보컬이 이루는 묘한 조화는 풀세팅으로 활동했던 원년멤버에 비해 단출해 보이지만, 여전히 알차고 충만한 사운드를 완성해낸다.
비틀거리는 머릿속을 고집스럽게 두드리는 보컬의 운율을 비집고 들어와 무심하게 버스와 클라이막스를 오가는 기타 사운드가 인상적인 타이틀곡
따뜻한 척 날카롭고, 뭉툭한 척 날이 선 운디드플라이의 감성적 더듬이는 무심한 도시에 살아가는 사소한 사람들의 예민한 상처와 공상들을 보듬으며 한국 모던락의 한 장면을 의미있게 장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