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클레이더만, 장 끌로드 보렐리와 함께 80년대 프렌치 팝 사운드의 3인방!
프랑스 국립 음악원 출신의 니콜라스 드 앙젤리스 베스트 모음집!
한편의 시를 읽고 있는 듯한 서정적이고 섬세한 멜로디와 클래식적인 분위기..
클래식 기타의 맑고 감미로움을 더한 더한 프렌치 팝사에 영원히 간직 될 "슬픈 안나를 위하여 눈물로 적은 시", "아모르 몬 아모르"를 비롯 총 20편의 대표곡 수록
* 초판 한정 3단 고급 디지팩
* 전곡 24Bit 디지털 리마스터링 발매
* 탁월한 음질의 오디오 파일용 골드 디스크 제작 !!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언론인은 시드니 신문에서 니콜라스 드 앙젤리스 (원래 불어식 발음의 이름은 니콜라 드 앙젤리스가 정확한 발음이지만 국내에서 오랜 동안 니콜라스 드 앙젤리스 혹은 니콜라스 드 안젤리스로 통용되고있어 편의상 니콜라스 드 앙젤리스로 표기했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알랑대는 미소, 이탈리안의 검은 머리, 프랑스인의 매력, 이것이 니콜라스 드 앙젤리스의 순수 매력이다! 그의 손의 크기와 손가락 길이는 매우 인상적이다." 만약 그의 선천적인 우성적인 기질에 불구하고 후천적인 재능이 없었다면 니콜라스는 그가 훈련 받은 고전적인 레파토리를 연주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니콜라스는 10살의 나이에 파리 아카데미에서 한 스승에게 그에게 첫 영감을 준 악기인 기타를 배웠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회상한다 "이렇게 어렵고 고된 훈련이 없었더라면 확실히 더 쉬운 곡을 연주할 때가 됐을 때 큰어려움에 봉착했을 것이다" 라고..
16살에는 니콜라스는 프랑스의 매우 재능있는 음악인들의 소그룹 중의 하나인 Michel Berger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18살부터는 그 천부적인 실력과 노력을 인정받아 Julien Clerc, Sylvie Vartan, Fabienne Thibault, Michel Legrand, Jean-Claude Petit, Yves Montand, Claude Aznevour, Yves Duteil, Nilda Fernandez, Enzo Enzo등과 같은 많은 프렌치 거장들, 팝스타들과 함께 공연 또는 스튜디오 작업을 했으며, 가장 많은 부름을 받는 전문 세션 연주가 되었다.
* Quelques Notes Pour Anna (슬픈 안나를 위하여 눈물로 적은 시)
마침내 1981년 그는 그의 첫 솔로 앨범 "Quelques Notes Pour Anna" 를 녹음했다.
이 앨범은 당시 불과 몇 주만에 골드 레코드를 기록했으며 또한 그에게 성공의 길을 열어주었으며, 니콜라스에게는 프랑스의 로맨틱 기타의 영웅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그는 "Amour mon amour", "L'Espagnol", "Voyage", "Goa", "Grand Concert", "L'Amour à Plein Coeur", "Soleil", and the latest "Toute La Guitare" 앨범들을 내놓았다. 앨범을 발표하는 동시에 니콜라스는 유럽, 일본, 호주, 남아프리카, 북아프리카까지 매년 수 천마일의 거리를 오가며 전 세계에 걸쳐 많은 콘서트를 해왔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항상 살아있다. 그리고 항상 기타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설사 사막으로 된 섬에 가게 되더라도 나는 기타와 함께있을 것이다" 니콜라스는 콘서트 투어을 하지 않을 때에는 그의 아내인 에블린, 두 딸들과 함께 파리의 외곽에서 조용히 지낸다. 그의 온화한 성품에서 뭍어나오는 가족애(愛) 대한 정의를 니콜라스는 이렇게 내리고 있다. "나는 내 스튜디오에서 매일 일을 하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을 알기를 원한다."
그의 목표는 이제 유명한 대음악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자신이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창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