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의 원류에 대한 진지한 접근
1. 클래식 록을 추구하는 밴드
클래식 록에 대한 애정과 신념으로 똘똘 뭉친 그랜케일(Grancale)은 2003년 말에 결성된 밴드로, 이번에 발매하는 EP 『Disgrace and Victory』는 밴드의 첫 성과물이다. 결성부터 첫 EP까지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린 셈이다. 나아가 박용진(기타), 김태우(드럼), 천정식(보컬) 등 밴드 멤버 모두 1996년부터 시작한 로컬씬(부산, 대구)의 활동을 감안한다면 정말 오랜 세월의 경험과 노력이 담긴 첫 EP라 하겠다. 실질적인 수록곡은 3곡이지만 밴드의 능력은 녹록치 않다.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에서부터 블랙 크로우즈(Black Crowes)에 이르기까지. 장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섬세한 풍미까지 제대로 전달한다.
2. 원류에 대한 이해와 모색
본 EP는 5트랙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세 곡의 싱글과 한 곡의 소품이 자리하고 있으며, 각각의 싱글이 모두 세 멤버의 특징과 매력을 잘 보여주도록 구성되어 있다. 블랙크로우즈와 롤링스톤즈가 즐겨 사용하는 오픈 G 튜닝(D-G-D-G-B-D)이 독특한 첫 곡 「Disgrace and Victory」부터 클래식 록의 소박하지만 진득한 맛이 느껴진다. 1960년대 후반 롤링스톤즈의 (「Start Me Up」이나 「Honkytonk Women」 같은) 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이 곡부터 밴드가 추구하는 바는 분명하다. 여기에 허스키한 천정식의 보컬은 밴드의 독특한 아우라를 완성한다. 두 번째 곡인 「Healer's Song」은 밴드 버전과 어쿠스틱 기타 버전 모두 능수능란한 박용진의 보틀넥 주법을 양껏 즐길 수 있다. 일렉트릭과 어쿠스틱 기타에서 슬라이드 기타 연주가 얼마나 같고도 다른지, 얼마나 풍부한 소리의 매력을 뿜어내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멋진 트랙이다. 기타 키드들에게 일청을 권하고 싶을 정도로 멋진 연주다. 밴드 버전의 경우, 곡 마지막에 서던록 스타일의 긴 기타 솔로가 덧붙여져야만 할 것 같은 절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라이브라면 이 뒤에 분명 슬라이드 기타 솔로가 길게 붙여질 것이다. 실질적 마지막 곡인 「Reptillian Brain」은 드러머 김태우를 위한 곡이다. 단순한 곡 진행과 반비례하는 드럼의 활약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킥 드럼의 현란한 운용과 뮤트 플레이는 박진감 넘치게 진행된다. 더블 페달이 아닌 싱글 페달을 사용하는 김태우의 킥 드럼 운용은 놀라울 정도다. 여기에 레드 제플린의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의 추임새가 연상되는 천정식의 즉흥적인 흥얼거림은 곡에 매력을 더한다. 채널을 가로지르는 기타의 오버 더빙 역시 레드 제플린을 연상시키지만, 단순한 카피가 아니라 그랜케일의 음악적 뿌리를 확인시켜준다는 의미가 더욱 강하다. 어쿠스틱 기타 소품인 「Days of Glory」와 어쿠스틱 버전의 「Healer's Song」은 다시 한 번 기타리스트 박용진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슬라이드 기타의 울림과 손맛이 짜릿한 벤딩까지 기타라는 악기가 가진 감성을 최대한 끌어내고 있다. 하모니카의 적절한 삽입은 블루스에 기반한 클래식 록 특유의 질감을 더욱 강조해주고 있다.
3. 정규작의 기대감이 배가되는 데뷔 EP
원 테이크로 녹음하고 최소한의 오버 더빙을 거친 그랜케일의 사운드는 라이브 현장의 느낌이 충만하다.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만들어내는 클래식 록의 정취는 한국 대중음악에서 참으로 만나기 어려웠던 사운드다. 예음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에 최선을 다한 밴드는 자신들의 믹싱 소스를 최고로 매만져 줄 마스터링 엔지니어를 찾았다. 결국 서태지와 크래쉬의 앨범 작업으로 한국 팬들에게 잘 알려진 뉴욕의 스털링 사운드(Sterling Sound)의 테드 옌센(Ted Jensen)에게 마스터링을 맡겼고, 밴드의 의지가 잘 반영된 빈티지 록 사운드로 다듬어졌다. 이처럼, 유행에 곁눈질하지 않으며 블루스라는 뿌리에 천착한 클래식 록을 펼치는 밴드, 신념이 느껴지는 앨범을 만나는 것은 록 팬들에게 기쁨이다. 동시에 밴드가 추구하는 스타일을 지켜나가기 만만치 않을 정도로 현실의 벽이 높아 보이기도 한다. 그랜케일에게 남은 과제는 밴드가 일궈온 뿌리를 바탕으로 앨범으로까지 작업을 이어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분명 쉬운 길이 아니다. 그러나 EP에서 확인한 굳은 심지는 향후의 작업에 대한 희망을 갖기 충분하다. 그들의 미래를 따라 한국 대중음악이 또 하나의 가지를 뻗어나갈 것이다.
-조일동 (웹진 음악취향Y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