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2nd EP [매혹들]
낯설고 익숙한 매혹들이 펼치는 소리의 향연
아주 보통의, 혹은 아주 특별한 매혹들.
“삶에서 우리는 여러 대상들에 매혹 당하고, 또 여러 대상들을 매혹합니다.”
삶이 주는 지난함, 권태,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위안 아닌 위안은 우리의 생을 버티게 해주는 주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매혹들’이 있다. 우리의 눈을, 마음을 사로잡아 쥐락펴락하는 수많은 매혹의 순간들. 어느 날 문득 내 방 창문에 찾아오는 뮤즈, 세상의 끝에서 발견한 새로운 차원으로 향하는 문, 좌절의 순간 찾아오는 사람과 사랑. 이 모든 매혹들이 지닌 찰나의 터질 듯한 에너지는 우리의 삶에 생명력과 추진력을 동시에 불어넣곤 한다.
이제 두 번째 EP를 발표하는 싱어송라이터 이미지는 바로 이 ‘매혹의 순간들’에 주목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각자만의 ‘매혹’들로 구성되지 않을까요. 우리를 평온하게 하는 것, 설레게 하는 것, 미치게 하는, 비이성적으로 만드는, 불안하게, 슬프게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해보며 만든 노래들입니다.”
과연 그렇다. 앨범 타이틀과 동명의 곡 ‘매혹들’로 시작해 영어 버전으로 다시 한 번 실은 ‘허그미’까지 총 다섯 곡을 담고 있는 앨범은 결코 길지 않지만, 그녀가 생의 한 가운데에서 찾아낸 반짝이는 매혹의 순간들로 밀도 있게 채워져 있다.
Track 01. 매혹들(Things that attract us)
잔뜩 일그러뜨린 보컬로 시작하며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첫 곡 ‘매혹들’은 곡의 진행과 함께 조금씩 쌓아가듯 소리의 텍스쳐와 심상을 만들어 낸다. 동시에 멜로디와 노랫말에 실린 일상의 이미지들은 ‘춤추고 달리며’, 때론 ‘엇갈리고 쫓기며’ 새로운 세계를 향한다. 노랫말처럼 우린 달리고, 우린 춤춘다. 낯선 언어들 속에, 익숙한 장면들 속에.
Track 02. 허그미 (Hug me)
그렇게 성공적으로 ‘이미지적’인 세계에 발을 들인 이들을 기다리는 건 ‘허그미’다. 제목 때문에 뻔한 사랑노래라 여겨질 가능성이 큰 곡이기도 한데, 실제로 앨범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넘버이기도 하다. 하지만 쉽게 들리는 모든 노래가 쉬운 노래는 아닌 법. 팀파니를 연상시키는 드럼과 어딘가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듯한 기타 연주, 코러스의 조화가 펼쳐내는 넓은 공간감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공들인 조합의 사운드와 여러 층의 보컬 레이어가 그려내는 ‘껴안음’은 결코 만만치 않다.
Track 03. 낙하하는 모든 것(Everything is falling down)
이어지는 곡 ‘낙하하는 모든 것’은 타나토스와 에로스가 공존하면서도 긴장 대신 묘한 덤덤함이 자리하는 특유의 감성을 살리기 위해 Mot의 이이언(eAeon)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점이 인상 깊다. 허밍어반스테레오 레코딩 세션을 담당했던 기타리스트 지금(zigm)의 포근한 아르페지오는 결코 흥분하지 않는 이이언 특유의 건축적인 사운드 얼개에 함께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룬다. 이 곡의 사운드가 그려내는 양가적인 감정은 주제의식과도 일맥상통한다. “차갑고도 따뜻하고, 슬프고도 무한히 삶은 아름답단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이 유한하게 낙하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는 그녀의 말처럼.
Track 04. 평범한 사랑을 꿈꾸네(Ordinary love)
따뜻한 긴장과 슬픈 이완의 중독에서 빠져 나올 즈음, 마지막 곡 ‘평범한 사랑을 꿈꾸네’가 시작된다. 수록곡 가운데 가장 전개가 드라마틱한 이 곡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드리미(Dreamy)한 일렉트로니카 넘버들이 전해주는 부유하는 공감각을 그대로 그린다. 그런 사운드에 흔히 붙을법한 서사와는 달리, 그저 ‘보통의 사람’과 ‘보통의 사랑’을 꿈꾸는 노랫말, 그리고 갑자기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어쿠스틱 기타와 이미지의 목소리만 남는 마무리가 매력적이다.
더불어 그녀가 우리의 삶에서 솎아낸 매혹들을 음악 이외의 수단으로도 만나볼 수 있게 기획하고 있다는 점도 잊으면 서운하다. 지금껏 미디어 아티스트, 작가, 기획자로도 활동해 온 그녀는 이미 지난 1st EP [은유화] 발매 공연 당시 관객들이 음악을 듣고 떠올린 이미지를 즉석에서 그려 연주하고 있는 뮤지션들의 몸 위에 투사시키는 작업 <비쥬얼라이브visuaLive>를 진행했다. 이번 앨범의 경우 CD부클릿의 사진과 타이포그라피를 통해 곡에 대한 시각적인 해석을 담아냈다. 음악에 시각적 상상력을 더해 곡의 컨셉을 일관되고 명확하게 담아내고자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또한 [매혹들] 쇼케이스에서는 각각의 수록곡에 대해 청자들이 보내준 사진, 일러스트들을 수집해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음악과 이미지, 이미지와 영상,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그녀의 부지런한 움직임에도 주목해 볼 만 하다.
삶과 꿈,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아주 보통의 매혹들을 찾아낸 그녀의 앨범과 이어지는 활동이 어른이 되는 데만도 천 번은 흔들려야 한다는 고단한 21세기의 삶에 작은 온기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사실, 그렇게 거창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서로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어 이 중력을 이겨내는(‘낙하하는 모든 것’) 것만으로 가끔은 충분하다. 이 앨범이, 그런 든든하고도 매혹적인 어깨가 되어주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