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을 생동감 넘치는 그런지 사운드에 담은 올 어게인스트의 첫 EP [Any]
올해 1월 도발적인 메시지를 담은 두 곡의 싱글을 발표했던 밴드 올 어게인스트(All Against)의 EP가 발매됐다.
단 두 곡의 싱글이었지만 싱글 발표 이후 올 어게인스트의 행보는 바빴다. 크고 작은 공연을 소화하는 한편 보컬리스트 이윤찬은 밴드 활동과는 별개로 데이먼(Damon)이라는 이름으로 싱어송라이터로서 활동 중이며,
이러한 멤버들의 바쁜 스케쥴에도 불구하고 올 어게인스트는 첫 싱글 공개 후 얼마 안 되서 EP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올 어게인스트는 이희두 (기타), 정승범 (베이스), 최상준 (드럼) 그리고 이윤찬 (보컬)으로 구성된 4인조 밴드다.
멤버들은 각각 오딘 (Oathean), 새크리파이스 (Sacrifice), 온 더 스팟 (On The Spot) 그리고 이윤찬 밴드에서 활동한 이력을 가지고 있고, 스타일이 다른 이전 이력을 하나로 모아준 매개체는 하드록을 기반으로 한 그런지 사운드였다.
피지컬로는 첫 공개되는 올 어게인스트의 이번 EP에는 총 5곡이 담겼다. 기존에 음원으로 발매된 ‘Hell Sweet Hell’과 ‘No. 9’이 음반의 처음과 마지막에 배치되었고, 신곡 세 곡이 더해졌다.
세 곡의 신곡 역시도 지난해 말 공개된 두 곡과 마찬가지로 잼을 통해 밴드가 함께 완성했다. 기타를 맡고 있는 이희두가 곡의 뼈대를 이루는 리프를 만들면 이윤찬이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멜로디를 입히고 리듬 파트의 두 멤버는 살을 붙였다.
그리고 반복되는 합주를 통해 세세한 부분을 완성하며 가사를 붙였다. 이렇게 전형적인 올드스쿨 밴드들의 송 메이킹 방법으로 탄생한 신곡들은 마치 공연장의 생동감을 그대로 음반에 옮겨놓은 듯 거칠고 날카롭다.
앞서 이야기했듯 밴드를 하나로 모아준 하드록을 기반으로 한 그런지 사운드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더 없이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다.
주위를 환기시키는 드럼의 필인으로 시작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의 날렵한 움직임을 보듯 그루브로 퍼덕이는 베이스 기타 연주가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Feel Like’는
이미 공개된 두 곡으로 가졌던 올 어게인스트에 대한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에 한 치의 모자람도 없다. 밴드는 즉흥적으로 만든 곡이라 밝히고 있지만, 그 어느 곡보다 공연장에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기에 적절한 업비트의 트랙이다.
‘Any’에는 시리아 내전과 관련해 평화와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그들이 어디에 살 지라도, 어쨌든 그들은 그냥 아무나가 아니다 (Anywhere They Live Anyway, They’re Not Just Anybody)”라는 가사처럼
그들 역시 우리의 가족이고 자식이라는, 그들의 현재 상황을 최소한이라도 알리고 싶었다고. ‘Anytime’, ‘Anywhere’, ‘Anyway’, ‘Anybody’ 등 의도적으로 ‘Any’가 접두사로 사용된 단어를 등장시키며 강조한 가사는 그대로 곡의 제목이 됐다.
원래 가사가 만들어지기 전 공연을 통해 스캣을 통해 선보였던 곡이었는데, 관객의 반응이 좋아 음반의 타이틀로 결정했다.
올 어게인스트의 곡 가운데에서는 유일하게 파워 발라드의 형식을 빈 곡으로 밴드의 표현 영역을 횡적으로 확대시켰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가진다.
‘Cowards On The Redfield’는 이미 싱글로 발표해 과거와 현재 음악판의 세태를 비판했던 ‘Hell Sweet Hell’과 ‘No. 9’처럼 홍대 음악 신 (scene)의 현재를 그 소재로 삼았다.
‘Coward (겁쟁이)’는 자신들이 홍대에서 20년 동안 만나왔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인간성이 결여된 이들을 칭한다.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껍질’에 치중하고 ‘힙’하고 ‘쿨’한 척 트렌드에만 휘둘리는 철새 같은 뮤지션과 관계자를 향한 직격탄이랄까.
빙빙 돌려 얘기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토해내는 가사처럼 시원스레 호방한 사운드가 돋보이며, 영어와 공존하는 한글 가사도 이물감 없이 잘 어우러진다.
이번 EP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올 어게인스트는 지난 5월 25일 방영을 시작한 JTBC 드라마 ‘스케치’에 ‘Sunset’를 제공했고 이 곡 역시 타협 없이 완고한 자신들만의 사운드를 그대로 담았다.
‘쌥쌥이’라는 가사로 칭했던 ‘Coward’들의 모습과는 그 뿌리부터 다른 자신감이자 한 곳을 향해 나가려는 굳은 의지의 표명일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에 턱없이 부족했던 두 곡의 싱글만을 가지고 있던 올 어게인스트에게 이제야 비로소 정식 명함 한 개가 생겼다.
물론 이번 음반 역시 정규앨범이 아니고 5곡이 수록된 EP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밴드가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왕성한 창작력을 생각한다면 꾸준하게 이들을 만나는 일은 계속될 수 있을 듯하다.
시류와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예전부터 그래 왔듯이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개척하며 내딛는 거침없는 행보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박수를 보낸다.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