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이은미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공연장이 그녀의 주된 행동 반경이기 때문이다. 무대 위의 그녀는 누구보다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신발조차 신지 않고 스테이지를 마음껏 가로지르는 그녀에게 사람들은 ‘맨발의 디바’라는 호칭을 선물했다.
이 격정적인 여가수는 1988년 다운타운에서 처음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신촌블루스의 앨범에 참여하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그녀는 1992년에 와서야 꽃을 피운다. 그해 발표된 1집에 실린 ‘기억 속으로’는 놀라운 반응을 몰고왔다. 이 곡은 엄청난 리퀘스트를 받았으며, 많은 이들에 의해 여기저기서 불려졌다.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그녀는 유려한 발라드를 부르는 가수로 기억됐다.
그 이미지는 다음 앨범의 히트곡 ‘어떤 그리움’을 통해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그녀의 콘서트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은 그녀의 빼어난 록 보컬을 알고 있었고 내심 작품에 그 재능이 반영되기를 바랐다. 그동안 가려졌던 그녀의 모습은 세 번째 앨범 ' 자유인 '에서 활짝 드러났다. 수록곡들은 열기에 찬 라이브 현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했다. 폭발적인 ‘참을 만큼 참았어’는 기존의 이미지를 단숨에 날려 버렸다. 사람들은 서서히 그녀의 진가를 알기 시작했다.
이은미는 다른 가수들의 곡들도 무리 없이 소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원곡의 감성과는 또 다른 느낌을 선사하는 매력적인 보이스는 이미 1996년의 리메이크 앨범 ' 팝스 월드 '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이었다.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Greatest love of all'', 저니(Journey)의 ‘Open arms''등의 팝 명곡들을 멋지게 불러낸 그녀는 1999년 ' Nostalgia '를 통해 가요에도 각별한 애정이 있음을 보여줬다. 그녀의 보컬은 발라드, 재즈, 록, 포크의 경계를 자유롭게 가르고 있었다.
2001년의 새 앨범 ' 노블레스 '에서 이은미는 그 다양한 장르를 한데 끌어들였다. 이 앨범은 타이틀이 상징하듯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적 자존심을 지켜 나가겠다는 선언이었다. 어느 새 서른을 훌쩍 넘어버린 그녀의 목소리엔 치기 어린 과시욕보다 편안함이 묻어 있었다.
이은미는 아직도 1년에 수십 회 이상의 공연을 치뤄내며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드러내고 있다. 비록 TV에서 접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꾸밈 없는 진솔한 음악을 바라는 이들의 곁에 언제까지라도 머물러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