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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일의 썸머], [예스맨]의 히로인 주이 디샤넬(Zooey Deschanel)과
고독한 인디 포크/얼트 컨트리 히어로 M 워드(M. Ward)가 결합해낸 달콤살벌한 듀오
쉬 앤 힘(She & Him)이 엮어낸 그 남자, 그 여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A Very She & Him Christmas]
깊은 맛이 있는 가성과 탁월한 기타연주, 그리고 빈티지한 톤으로 정평이 나있는 싱어 송라이터 M 워드(M. Ward)와 수많은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서서히 그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는 여배우 주이 디샤넬(Zooey Deschanel)은 이미 함께 두 장의 앨범을 발표했던 바 있다. 뭐 항상 하는 얘기이지만 시대를 불문하고 여배우들이 원체 앨범들을 많이 내왔던 지라 이는 그다지 큰 뉴스도 아니었는데, 주이 디샤넬의 경우 의외로 작사/작곡에 놀라운 재능을 보였고, M 워드가 이 재능을 너무나 적절하게 다듬고 포장해 주면서 비로소 쉬 앤 힘(She & Him)은 평단과 세일즈에서 동시에 인정 받는다.
M 워드는 고독하고 블루지한 감성의 탁월한 트랙들을 만들면서 인디 포크 팬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노라 존스(Norah Jones)가 자신의 두 번째 정규작 [Not Too Late]에 직접 모셔 오면서부터는 팝 팬들의 관심 또한 받기 시작한다. 머지(Merge) 레코드의 쟁쟁한 아티스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승승장구 했으며, 초기의 앨범들이 리이슈 되면서 다시금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주이 디샤넬은 영화를 할 수밖에 없는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타이타닉(Titanic)]부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등의 촬영 감독, 그리고 [트윈 픽스(Twin Peaks)]의 몇몇 에피소드를 연출한 것으로 유명한 칼랩 디샤넬(Caleb Deschanel)이고 어머니 역시 영화 배우인 메리 조 디샤넬(Mary Jo Deschanel), 그리고 주이 디샤넬의 언니 에밀리 디샤넬(Emily Deschanel) 또한 배우를 직업으로 삼고 있었다. 주이 디샤넬의 경우 작품 선택능력을 비롯한 기존의 커리어도 물론 성실했지만 앞으로의 진로 또한 주목되는 연기자였다.
She & Him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영화 [The Go-Getter]에서부터 였다. 감독 마틴 하인즈(Martin Hynes)는 주이 디샤넬과 M 워드에게 엔드 크레딧에 들어갈 노래를 듀엣으로 불러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둘은 리차드 톰슨(Richard Tompson)과 린다 톰슨(Linda Thompson)의 곡 [When I Get to the Border]를 함께해낸다. 사실 주이 디샤넬은 윌 패럴(Will Ferrell)의 크리스마스용 영화 [엘프 (elf)]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는데 M 워드는 이미 그 당시부터 그녀의 목소리를 눈여겨보고 있었다고도 밝혔다. 그는 주이 디샤넬과의 대화 도중 그녀가 이미 혼자서 수많은 곡들을 써왔고 자신의 집에 데모 음원 또한 쌓아놓고 있다는 색다른 사실을 알게된다. M 워드는 그것들을 들어보고 싶어했고 주이 디샤넬은 처음에는 좀 빼보다가 나중에는 결국 그 음원들을 M 워드에게 보낸다. 이 데모를 듣고 넋이 나간 M 워드는 황급히 앨범을 제작해보지 않겠냐고 찔러보는 상황에 이른다.
A Very She & Him Christmas
2010년 두 번째 앨범의 릴리즈와 투어를 끝내고 M 워드는 당분간 솔로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라 언급했지만, 결국 1년 여의 시간 정도가 흐른 뒤에 불현듯 본 작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 주이 디샤넬은 이미 8월경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 크리스마스 프로젝트에 대해 언급했던 바 있었는데 아무래도 주이 디샤넬이 하자고 꼬드긴 모양이다. 뭐 M 워드 형의 경우에도 이게 더 벌이가 좋을 테니 크게 마다할 이유가 없을 듯싶다. 사실 크리스마스 앨범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Volume One] 당시부터 나왔다고 한다.
결국 공개된 이번 크리스마스 앨범은 여전히 이 두 명만이 가능한 분위기로 완성되어있다. 12곡의 크리스마스 노래들은 다음 단락에서도 얘기하겠지만 크리스마스의 전통적인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훌륭한 선곡으로 이루어져 있는 편이다. 바이닐의 경우 빨간색 알판으로 발매된다는 점을 참고하실 것.
레코딩은 이전보다 간소하게 진행됐다. 인터뷰에 의하면 소리들을 많이 쌓아 올리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즉흥적으로 진행시켰다고 한다. 그럼에도 몇몇 빅 네임들이 눈에 띄는데, 올해 해체한 라일로 카일리(Rilo Kiley)의 멤버였던 피에르 드 리더(Pierre De Reeder)가 레코딩과 두 곡의 퍼커션을, 그리고 비틀즈(The Beatles),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 멤버들의 솔로 앨범들과 닐 영(Neil Young)의 앨범들에서 세션을 했던 전설의 드러머 짐 켈트너(Jim Keltner)가 대부분의 곡에 퍼커션으로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주이 디샤넬은 피아노와 우클레레, 그리고 M 워드는 기타와 오르간을 각각 분담해냈다. 이런 심플한 편성은 마치 친구들끼리 모여있는 파티의 분위기 비슷한 것을 조성하는 역할을 했는데, 커플이나 가족으로 이루어진 조용한 크리스마스의 풍경 또한 연출해내고 있다. 거실 벽난로 옆에서 조용히 듣는 캐롤 앨범을 생각하면서 작업했다고 한다
대부분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크리스마스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버전으로 유명한 [The Christmas Waltz]가 어쿠스틱 기타반주와 피아노로 시작된다. [나홀로 집에(Home Alone)], 그리고 [대부(The Godfather)]에 삽입되기도 했던 크리스마스 고전 [Have Yourself a Merry Little Christmas]의 경우 일전에 브라이트 아이즈(Bright Eyes)가 커버하기도 했었는데, 확실히 이 곡이 가진 정서는 모던 소년 소녀들에게 유독 닿아있는 듯 보인다. 본 곡의 경우 코난 오브라이언(Conan O'Briaen)의 TBS 프로그램 [Conan]의 대기실에서 코난 오브라이언의 기타백킹과 함께 작은 연주회처럼 진행된 것이 동영상으로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딜레이 걸린 할로우 바디 기타와 저변에 깔린 올겐, 그리고 코러스가 무척 은은하게 다가오는 트랙이었다. 역시나 수많은 이들이 커버했던 [I'll Be Home for Christmas] 역시 기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뭔가 행복한 우울을 한 가득 머금고 있는 듯 보였다. 앨범 전체에 깔려있는 이 리버브는 필 스펙터(Phil Spector)의 작업물들을 연상케 만든다.
비치 보이즈(Beach Boys)의 경우 일전에 주이 디샤넬이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과 직접 인터뷰했던 영상이 노출되기도 했는데, 결국 본 작에서도 비치 보이즈에 대한 애정은 계속되며, 그들의 1964년도 크리스마스 앨범에 수록됐던 [Christmas Day]와 [Little Saint Nick]을 각각 커버해냈다. [Chiristmas Day]의 경우 화려한 코러스는 그대로 남겨뒀으며, 모든 악기와 목소리에 오래된 리버브를 한 가득 채워놓았다. [Little Saint Nick]에서는 우클레레가 기본적인 반주를 하고있고, 역시나 현란한 코러스로 꽉꽉 채워져 있는 상태이다. 비치 보이즈의 노래들은 확실히 화려한 화음으로 듣는 맛이 있기 때문에 이는 꽤나 적절한 어레인지인듯 싶다.
NRBQ의 경우 쉬 앤 힘의 두 번째 정규작에서 커버곡을 발견할 수 있었던 아티스트인데 이번에도 쉬 앤 힘은 그들의 곡 [Christmas Wish]를 채택해냈다. 그리고 이 곡에서는 드디어(!) M 워드의 목소리가 메인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애달픈 메이저/마이너 코드웍, 그리고 코러스가 M 워드의 목소리에 더욱 직접적인 감정을 부여한다. 앤드류스 시스터즈(The Andrews Sisters)나 카펜터스(The Carpenters)의 버전으로 유명한 흥겨운 [Sleigh Ride]에서도 M 워드의 보컬이 꽤나 두드러지는 편이었다. 브렌다 리(Brenda Lee)의 곡으로 최초에 알려진 생기있는 [Rockin' Around the Christmas Tree], 그리고 우클레레 연주가 돋보이는 [Silver Bells] 등의 곡들이 차분하게 지나간다.
과거에도 언제나 듀엣으로 불려졌던 [Baby, It's Cold Outside]의 경우에는 남성이 집으로 돌아가려는 여성을 만류시키는 기존의 일반적인 남성파트와 여성파트의 구도를 바꿔 반대로 완성해내면서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과연 주이 디샤넬이 '바깥은 춥다'고 붙잡는데 돌아가버릴 남자가 이 세상에 존재할런지가 의문이다. 과거 이들의 노래에 나오는 휘파람 솔로는 이번에도 그럴듯한 타이밍에 등장하는데, 참고로 이 곡의 경우 일전에 언급했던 크리스마스 영화 [엘프]에서 주이 디샤넬이 샤워하면서 부르는 노래이기도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그리고 로우(Low)의 버전으로도 널리 알려진 [Blue Christmas] 또한 수록됐다. 앨범 자체에 여백이 많은 편인지라 로우의 걸작 크리스마스 앨범 [Christmas]를 사랑한다면 지금 당신이 듣고있는 본 작 역시 무척이나 삼삼한 감상을 선사할 것이다. 이 블루하고 차분한 앨범에 아마도 가장 적절한 선곡 중 하나지 않을까.
영화 [2046]에서는 냇 킹 콜(Nat King Cole)의 목소리를 통해 감상 가능했던 [The Christmas Song]의 경우 개인적으로도 할로우 바디 전기기타로 연주되어있는 버전을 좋아하는 편이었는데, 이 곡 역시 촉촉한 톤의 할로우 바디 기타 한대로 녹음되어졌다. 곡 마지막에는 기타에 손을 떼는 소리까지 녹음되어있으며, 이 아름다운 노래는 골방에서 꽤나 그럴듯한 무드를 안겨줄 것이다. 훈훈하고 꿈결같은 본 크리스마스 레코드는 이렇게 차분하게 마무리된다.
이 올타임 명곡들로 이루어진 어쿠스틱 크리스마스 레코드는 냉랭해진 사람들의 가슴을 너무나 유연하게 녹여낸다. 일단은 요란하고 시끄럽지 않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몇몇 이들에겐 2011년도에 발매된 여느 크리스마스 앨범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이 될지도 모르겠다. 뭔가 그리움을 담고 있는 듯한, 넋을 잃게끔 만드는 훌륭한 크리스마스의 온기다.
주이 디샤넬은 여배우의 감각을 지닌 가창력으로 매번 다른 ‘연기’를 완수해냈는데, 이번에는 크리스마스 특집극이다. 물론 이것을 어레인지한 M 워드의 프로듀스 감각 또한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선명한 질감을 살리면서도 아늑하고 은은한 소리들을 성공적으로 담아냈다. 피치포크(Pitchfork)에서는 약간은 네거티브한 리뷰를 작성했는데, 리뷰에서 '분명 주이 디샤넬은 술에 취한 채 녹음했을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뭐 이것이 어찌보면 더 생생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했다는 표현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않나 싶다.
이미 이전 이들의 앨범을 들었다면 이 남녀가 어떻게 크리스마스 노래들을 만들지에 대한 예상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1900년대 중반의 무드를 모던하게 업데이트한 방식은 여전한 편이다. 하지만 예상보다는 훨씬 조용하며, 소수의 인원으로 레코딩 됐지만 전체적인 어레인지는 점점 더 어른스러워지고 안정되어가는 듯 보였다. 적은 악기들 사이로 주이 디샤넬의 목소리는 여전에 전면에 배치되어있어 그녀의 목소리에 십분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앨범의 타이틀대로 매우 쉬 앤 힘스럽다. 이 달콤함은 멋진 크리스마스 이벤트처럼 다가올 것이며 그녀의 가성은 올 크리스마스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일 것이다. 2집 이후 활동을 쉴 것으로 예상했던 팬들에겐 갑작스럽지만 기분 좋은 선물과도 같은 앨범이기도 하다. 보편의 힘을 가진 채 반세기 이상을 버텨온 고전 캐롤들을 소재 삼아 이 남과 여는 상상 이상으로 뭉클한 크리스마스의 풍경들을 재연해낸다. 손에 닿는 감각, 그리고 향취를 소중히 여기는 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의 마법이다.
한상철(불싸조 http://facebook.com/bullssa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