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하게 다듬어진 인디 씬의 흐름을 도발하는, 날 것 그대로의 사운드와 애티튜드!
한국 인디의 오리지널 메카 부산의 질주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귀중한 앨범!
◈ 2013년, 부산 인디의 현재를 보여주는 동백꽃들의 떼창
한국에서 ‘인디’라는 용어는 1990년대 중반부터 등장했지만 이미 그 이전부터 부산은 속된 말로 빠다필 제대로 나는 무시무시한 기교로 무장한 한국 헤비메탈의 성지였다. 그 기본기와 태도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수많은 밴드들이 90년대 중후반 홍대 앞을 누비며 한국 인디 1세대로 활약한 바 있고 그들 중 상당수는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록밴드로 성장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모든 것이 기형적으로 중앙 집중화된 한국에서 인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로컬 씬’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 저항정신과 문화적 다양성이 고갈되고 있는 현재의 대중음악은 점점 더 미디어를 중심으로 양순하게 다듬어지고 있으며 어느 때보다 음악이 넘치는 시대라지만 진짜 인디라고 해도 좋을 만큼 솔직하고 거칠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음악은 오히려 점점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
이제 인디밴드란 말은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만큼 대중화됐고 나아가 최근 부산에서는 인디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센터나 인디스테이션 같은 이름의 공간까지 마련되고 있다. 잘 가고 있는 걸까? 거품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날 것 그대로의 인디음악이 가진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는가? 그리고 과연 한국의 인디 씬에 로컬이란 게 있기는 한 걸까? 이런 의문들에 대한 하나의 반가운 대답이 한반도 남쪽, 동백꽃이 피는 곳, 갈매기 떼 나는 곳, 부산에서 출현했다.
◈ 자발적으로 뭉친 부산 지역 인디밴드들의 기획공연 ‘동백락원’, 그 열 번째 이야기
지난 2009년부터 부산 지역의 인디밴드들이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며 꾸려온 자발적인 공연 ‘동백락원’이 그 열 번째 이야기를 시작하며 동명 타이틀의 앨범을 발매했다. 밴드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움직임으로 이뤄진 이번 프로젝트에는 공연포스터부터 홍보영상, 공연장 및 밴드 섭외 등 하나에서 열까지 참가 팀들과의 긴밀한 소통으로 진심을 담보하면서도 대중들과 조금이나마 더 호흡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오롯이 담겨있다.
인디 문화의 표면만을 보고 무시하거나 반대로 정치적, 경제적, 혹은 제도적 이해관계에 따라 맘 편하게 활용하려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앨범은 음악 자체는 물론 그것을 둘러싼 일종의 태도라는 측면에서도 큰 환기를 제공한다. 확실히 부산은 부산, 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 화끈하면서도 솔직한 사운드에는 지역의 정서가 물씬 스며있고 오랜 시간 동안 자신들의 음악에 긍지를 가지고 활동해 온 수많은 뮤지션들의 자존심도 고스란히 녹아있는 뜨끈뜨끈 후끈후끈한 컴필레이션 앨범 <동백락원>을 소개한다.
◈ 타성에 물든 우리의 감각을 때리는, 시원시원하고 박력 있는 사운드들의 파도
앨범의 포문을 여는 하드코어 밴드 ‘과매기’의 <Trail of tears>는 10년의 관록을 증명하듯 원초적이며 공격적인 사운드로 앨범 전체의 지향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부산의 괴물, 이란 별명처럼 이미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고 있는 헤비 뮤직의 대표 주자답게 헤비 사운드의 기본을 충실히 들려주고 있다. 지난 2012년 부산국제록페스티벌을 통해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룬 파워그루브 밴드 ‘판다즈’의 <Wake up>은 초창기 얼터너티브 록음악이 보여주던 그런지한 감수성을 그들 나름의 독특한 그루브와 한국적인 감수성으로 들려주고 있으며, ‘피버독스’의 <Papillon>은 흑백로맨스영화의 배경음악처럼 거칠면서도 상큼한 느낌이 공존하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러브 송을 들려주고 있다. 게토밤즈 출신 현민호를 중심으로 뭉친 똘끼 충만 펑크밴드 ‘스톤드’는 명곡 ‘녹킹 온 헤븐즈 도어’의 제목을 패러디한 <Knocking on hell's door>로 답답한 일상에 대한 분노를 펑크에너지 그대로 여과 없이 분출하고 있으며 70년대 초창기 록음악의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Cowchips’의 <Highway Blues>는 끝없이 펼쳐진 광야를 달려가는 서부의 무법자를 노래한 가사처럼 진한 블루스 느낌의 컨추리록을 선보인다. ‘락반’의 <청춘>은 정통 록음악의 기반 위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곡 구성을 통해 박력 있는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으며 금속성의 메탈음악과 그로울링 보컬로 무장한 ‘매닉시브’는 <Hope is in The Sun>을 통해 격앙된 감정을 다스리려하기보다 오히려 증폭시켜 들려준다. 스트레이트한 사운드를 돌직구로 꽂아 넣는 하드코어밴드 ‘올 아이 해브’의 <Defiance>와 묵직하고 남성적인 사운드 위에 거친 매력의 여성보컬을 더해 위태롭고 쓸쓸한 느낌마저 자아내는 헤비록밴드 ‘헤드터너’의 <Revolution>, 마지막으로 그런지한 사운드로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감정을 노래한 ‘헤르츠’의 <Tear>까지 저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깔을 간직한 총 10곡의 원초적 록 넘버들이 시원시원하고 박력 있게 철썩이는 육중한 파도처럼 진한 자극을 선사하고 있다.
◈ 뜨겁게 예열된 부산발 인디밴드들의 엔진에 시동을 걸어주자!
이 앨범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역의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에너지, 그리고 그들이 바라보는 지역과 일상의 문제들을 부디 귀 뿐 아니라 온 몸으로, 또 피부로 뜨겁게 느껴보길 바란다. 자부심을 가진 예술 활동이 얼마나 화끈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지, 직접 기획하고 행동하며 부딪치는 문화가 얼마나 날 것 그대로의 힘으로 타성에 물든 우리들의 감각을 때려대는지, 그리고 주류 혹은 미디어에 편승하지 않고 오롯이 제 길을 한 걸음씩 걷고 있는 이들의 음악이 우리 자신의 일상과 우리 주변의 세계를 지금보다 얼마나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할 수 있을지 화끈하게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마련된 것 같다.
미디어가 조명하기 이전부터 이미 한국 인디의 오리지널 메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부산에서, 그 과거의 영광과는 상관없이 다시금 힘차게 포효하며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처럼 뜨겁게 예열된 엔진에 이제 막 시동을 걸고 있는 이들의 결과물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