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프로젝트 밴드 SAL의 최형배가 SAL 3집 <꿈꾸는 양서류>를 발표했다.
SAL은 하얗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의 ‘살’을 영문 발음표기한 것이다. 몸도 뼈도 아닌 살. 몸보다 구체적이고 뼈보다 직접적이어서 더 노골적이고 관능적인 살. 인간적인, 인간의 체온이 느껴지는 음악을 추구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여전히 모든 곡의 작사 작곡은 최형배가 했다. 편곡 연주 등 모든 제작을 혼자 해낸 1집 <스물하나, 바람 같은 목마름>과 국내외 걸출한 뮤지션이 대거 참여한 2집 <술과 꽃등심의 나날>에 이은 3집 <꿈꾸는 양서류>는 그가 평소 아끼는 음악 후배들과 함께 작업했다. 라틴탱고재즈밴드 라벤타나의 리더 정태호가 아코디언과 드럼에, 하수상밴드의 선미킴이 기타와 보컬에, 평행프로젝트의 강평강이 피아노와 보컬에 참여해 한층 폭넓은 음악을 선보인다.
양서류는 두 곳의 서식지에 사는 동물이다. 어릴 때는 아가미로 수중호흡을 하며 물에 살고 성장하면 폐와 피부로 호흡하며 육상에서 산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면서도 직장과 음악이라는 두 서식지를 결코 떠나지 못한 그는, 원 밖에 서면 원 안이, 원 안에 서면 원 밖이 좋아 보이고, 산에 가면 바다가 그립고 바다에 가면 또 산이 그립다고 고백하는 지극히 양서류적인 사람이다.
그의 생일은 5월 1일, 메이데이, 노동자의 날. 일개미의 운명을 가진 거다. 하지만 영혼은 한여름 베짱이. 이 지독한 운명과 영혼의 괴리가 도저히 수습이 안 될 균열과 뒤죽박죽 꼬여버린 인생의 결정적 제일 원인이 된다. 내일은 꼭 떠나리라 다짐하면서도 평생 손에서 연장을 내려놓은 적이 없는 해머링맨, 임신을 꿈꾸는 일개미, 노래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운명과 영혼의 괴리 사이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는 존재다.
엄마 젖을 빨던 아기가 자라면서 그 대상을 엄지손가락으로, 연필 꽁무니로 바꾸듯 때가 되면 습지를 떠나 뭍으로 서식지를 옮겨야 하는데, 철이 안 든 채 성장해버린 그는 이제 수중과 육상에서의 호흡을 겸하기로 한다.
고단한 직장생활 중에도 꾸준히 자신의 음악을 발표해 온 그는 적어도 5년에 한 번은 정규음반을 내고 싶다 했었는데 공백이 길었다. 2집 발표와 함께 본격적으로 음악을 알리기 위한 밴드 활동을 준비하던 때 갑자기 찾아온 병마로 모든 계획은 중단됐다. 이후 생사를 오간 다섯 번의 수술과 재활의 반복. 죽음을 마주한 후 더 잘 알게 된 것은 삶이 좋다는 것뿐 아니라 위인보다 곁의 소박한 사람이, 거창한 인생보다 소소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이었다.
이 앨범은 양서류의 꿈과 일상과 투병의 기록이다. 투병의 흔적은 곳곳에서 무심히 드러난다. '괜찮아질까요 이 약을 다 삼키고 나면', '누워 이름을 말하고 채 열을 다 세기도 전에 난 잠들고 다음 일은 알 수 없겠죠', '아플 때 절대 내가 먼저 잠들지 않을게요', '다음 진료까지 한 달이 남았다면', '몸이 이 모양이 되고부턴 건강한 동력이란 걸 한 번도 발휘할 수 없었다는 게 너무 속상해'.
반면 온갖 풍상을 겪고도 삶과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은 여전하다. ' 펜대와 공구와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두 손에 진정 감사', '생일도 무슨 기념일도 아닌데 꽃을 들고 온 어느 추운 저녁', '갓 지어 윤기 흐르는 밥에 문어 모양 비엔나 소시지'.
재즈, 탱고, 왈츠 등 다양한 장르의 7곡은 모두 객원 가수가 불렀다. 익숙지 않은 리듬의 5/4박자 곡 <떠나야 안다>, <해머링맨>, <그냥 걷는다> 등 세 곡은 황도혜가 불렀다.
<해머링맨>은 라벤타나 멤버 정태호, 황영기, 최인환이 연주한 탱고곡이다.
선미킴이 부른 스윙 곡 <함께 먹은 기억>은 먹어도 여전히 배고프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음식으로 기억되는 사랑을 그린 노래다.
그 외에 Zy Kim(지킴)이 <괜찮아질까요>와 <언제라도 좋아요>를, 강평강이 <혼자인 이유>를 불렀다.
백세 시대, 아파지고 보니 고령자가 가장 부럽다는 그는 연륜이나 지혜, 빛나는 백발이 아닌 고령 자체가 부럽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의 꿈과 계획에 대해 수록곡의 가사를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많은 아픔 중 하나를 앓고 있어. 아프다고 늘 아프기만 한 건 아니야. 아픈 날도 있고 덜 아픈 날도 있고 오래 안 아프다가 갑자기 다시 아프기도 해. 그러다 한 번 마음에 불이 켜지면 그 불을 꺼뜨리고 싶지 않아. 서랍 속 습기에 젖은 폭죽을 꺼내 하늘로 쏘아 올리고 싶어. 누구에게라도 그 정도의 자격은 있는 것이야. 때로 서두르고 때로 주저앉지만, 탈옥을 꿈꾸는 죄수가 숟가락으로 벽을 뚫어내듯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긴 호흡으로 뒤돌아보는 일 없이 태양을 향해 그냥 걸어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