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대한 희망을 담아낸 연주
- About Happiness -조남혁 쿼텟
낯선 청춘 최규용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다시 말해 연인, 가족, 학교, 회사, 국가 등 다양한 조직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판단하는 주체가 있다고 해도 그는 그를 둘러싼 구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그럴 수 있다면 그는 기꺼이 일이 싫으면 여행을 떠나고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업을 바꾸며 즐거이 살 것이다. 스트레스 없이.
하지만 어디 그것이 쉬운 일이던가? 학교건 직장이건 아니면 그 어느 다른 조직이건 그 안에서 우리는 여러 압박, 부담을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나아가 보다 쉬운 적응을 위해 그 안에서 나를 만족시킬만한 이유를 찾으려 애쓴다. 그러면서 우리는 조직화되고 사회화된다.
음악인들도 마찬가지다. 이상적인 예술혼을 지닌 연주자라도 그는 생활인으로서의 의무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 그래서 음악적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오가며 답을 찾으려 노력하곤 한다. 이것은 늘 자유로운 상태의 연주를 추구하는 재즈 연주자들에게도 해당된다. 음악적으로 재즈 연주자들은 늘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려 노력한다. 그래서 스윙의 언어를 탈피해 비밥의 세계를 개척할 수 있었고 다시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 쿨 재즈, 하드 밥, 퓨전 재즈, 포스트 밥 등으로 이어지는 재즈의 화려한 역사를 단기간에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게다가 갈수록 재즈 연주자들은 특정 스타일로 통합되지 않는, 개인적인 면이 강한 재즈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주변 환경을 생각할 필요 없는, 순수한 음악적 자유는 매우 요원하다. 특히 재즈가 대중 음악의 주변으로 밀려난 후부터는 더욱 더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그런 중에도 자신의 환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변화에서 음악적 영감을 받아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는 영민한 연주자도 있다.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앨범의 주인인 드럼 연주자 조남혁이 그런 경우가 아닐까 싶다.
지난 2013년 첫 앨범 를 통해서 드럼 연주자는 연주간의 밀도 높은 호흡을 바탕으로 한 역동적인 연주와 질주의 순간에도 숨을 고를 줄 아는 낙관적인 여유의 정서가 맛나게 어우러진 포스트 밥 계열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당시 그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음악원에서 수학 중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있었겠지만 학생의 신분이었던 만큼 학구적인 자세로 재즈를 생각하고 이를 구체화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할 수 있겠다.
이후 그는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상황은 바뀌었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닌 지금 그는 재즈 드럼 연주자로서 자신의 음악을 진지하게 탐구하면서도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현실을 부양하는 책임도 다해야 한다. 그런데 어디 그게 쉬울까? 그래서인지 그는 행복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을 음악으로 정리해나갔다. 피아노 연주자 이명건, 기타 연주자 김기중, 베이스 연주자 오구일과 쿼텟을 이루어 녹음한 이번 앨범이 바로 행복에 대한 그의 고민의 결과물이다.
사실 이미 행복한 상태에 도달한 사람은 행복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현실에 아쉬움이 있는 사람이 행복을 생각하고 그 상태에 도달하기를 바란다. 앨범의 타이틀 곡에 해당하는“Happiness”가 바로 이를 대변한다. 질감은 다소 거칠어도 분위기는 상당히 감각적이다. 만약 피아노 대신 키보드가 자리했다면 포플레이의 느낌마저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피아노가 연주하는 테마나 기타 솔로를 들어보면 달콤한 분위기 가운데 약간의 우울이 함께 발견된다. 그래서 행복의 이상과 현실을 함께 생각하게 한다. 실제 조남혁은 아내가 첫 아이를 가졌을 때 느꼈던 행복과 불안을 바탕으로 이 곡을 썼다고 한다. 즉, 2세가 생기는 기쁨과 함께 아버지가 된다는,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을 담아낸 것이다.
“I Dream of you”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랑, 설렘 등 행복한 상태를 그리며 이 곡을 썼다고 하는데 분위기 자체는 마냥 행복하지 않다. 특히 어깨에 힘을 빼다 못해 축 늘어진 상태에서 연주한 듯한 이명건의 피아노 솔로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자의 안도감-하루를 잘 버텼다는-과 아쉬움-의미 없이 하루가 갔다는-같은 이중적인 정서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안도와 불안의 복합적인 정서는 “Self-respect”에서도 반복된다. 힘들고 우울할 때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을 키우자는 마음으로 썼다는 곡이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쓸쓸함이 지배한다. “On the way”는 어떠한가?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제대로 된 길인가를 고민하며 쓴 이 곡 또한 불안과 피로의 정서를 지녔다. 첫 앨범에 이어 다시 한번 아버지를 주제로 쓴 “Dear Father”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자식으로서의 죄송함이 함께 느껴진다.
그렇다고 조남혁이 자신의 현실을 행복하지 않다고 규정하고 다소 어두운 마음으로 곡을 썼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극복하려 한다. 그리고 그 희망을 연주 자체에 대한 집중, 즉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최선(最善)을 다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이 희망의 기운은 주로 업 템포의 곡들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뻐(IPPO)”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이 곡을 그는 아내가 아이를 갖기 전 미래에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작곡했다고 한다. 그런데 보통은 곡 제목이 주는 고운 이미지를 따라 달콤하고 산뜻한 멜로디를 중심으로 곡을 만들 텐데 이와 달리 그는 질주하는 리듬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솔로가 이어지는 역동적인 연주로 이루어진 곡을 만들었다. 그래서 막연히 예쁜 아가의 이미지가 아닌 그를 만났을 때 갖게 될 흥분이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I see your eyes”도 마찬가지. 사랑하는 사람의 착하고 아름다운 눈을 생각하며 썼다는 이 곡 또한 사랑스러운 멜로디로 곡의 정서를 표현하지 않고 뒤뚱거리는 리듬을 바탕으로 울렁이는 톤의 기타, 통통거리는 피아노 솔로 그리고 과하지 않은 드럼 솔로의 이어짐으로 표현했다. 그래서 사랑스러운 눈의 이미지보다는 그것이 주는 행복한 감정을 더 많이 느끼게 한다. 룩셈부르크로의 여행을 생각하며 쓴 “Look Look Luxembourg”에서도 그는 아직 출발도 하지 못한 여행의 설렘을 스윙감 넘치는 리듬과 솔로 연주를 통해 표현했다. 나아가 “Thirst”에서는 전기 충전된 강렬한 기타 솔로와 역시 역동적인 피아노 솔로를 통해 현실의 내적 갈등, 갈증에 대한 극복 의지를 표현했다.
한편 “What I want say”의 경우‘이야기를 할 때 적절한 시기를 생각하고 상대를 배려하며, 오해의 여지가 없이 투명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전언을 표현하기 위해 조남혁은 AABA 형식으로 곡을 만들면서 B부분을 코드만 설정하고 멜로디 부분을 따로 쓰지 않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테마 부분을 설명하면 기타가 AA를 연주한 후 피아노가 B를 즉흥으로 멜로디를 채운다. 그리고 다시 기타가 A를 연주하여 테마를 완성한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여유로운 분위기를 유지하는 가운데 생동감이 솟아오른다. 이 모두 B부분의 즉흥 연주 때문이다.
결국 조남혁은 이번 앨범에서 현재가 불안하다고 해도 내일의 희망을 품으면 결국 행복할 수 있음을 음악을 통해 드러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를 단순히 추상적 분위기의 강조가 아닌 충실한 연주-마치 음악만이 길이다라는 식의 응집력 있는 연주를 통해 표현했다는 것은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막연한 희망으로 행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직접 그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구체적인 행동의 표현이라고 할까?
그는 내게 이번 앨범이 “팝적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첫 앨범의 포스트 밥과 다른 퓨전 재즈, 스무드 재즈 스타일의 음악을 떠올렸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다시피 실제 앨범은 그렇지 않았다. 그가 말했던 “팝적이다”란 것은 멜로디의 흐름과 이를 바탕으로 풀어나가는 연주의 방식이 첫 앨범보다 부드러워졌고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낼만한 것이긴 했지만 퓨전 재즈, 스무드 재즈로의 전환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가 말한 “팝적이다”란 말은 몇 년 사이 바뀐 상황을 슬기롭게 활용하여 자신의 음악을 만들었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생활인과 음악인 사이에서 어떤 접점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음악을 부드럽게 만든 것인데 어쩌면 그 스스로도 이런 변화가 생경했는지 모르겠다.
우리네 삶이 어떤 파도를 타고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특히 요즈음처럼 혼란한 시국에서는 더 그렇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계속될 것이고 행복해지기 위한 우리의 노력 또한 이어지리라는 것이다. 여기에 조남혁은 자신만의 음악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