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스트의 목소리와 두번째로 협연한 로얄 헌트의 통산 6집 [The Mission]
로얄 헌트의 99년작 [Fear]는 밴드의 활동사상 가장 큰 전기가 된 작품이다. 지난 만 7년간의 활동을 통해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자신들의 입지를 확실히 다져온 로얄 헌트에게 있어서 보컬리스트 디씨 쿠퍼(DC Cooper)의 탈퇴는 기존의 팬층에 대한 불신을 가져오기에 충분한 밴드의 위기상황이었다. 클래시컬한 감성과 프로그레시브한 매력 사이를 교묘하게 이어온 밴드의 음악성에는 쿠퍼의 개성강한 목소리가 한몫 하는 바가 컸기 때문이다.
로얄 헌트의 음악성은 앨범 [Moving Target](96년)과 [Paradox](97년)에서 절정을 이루었고 클래시컬한 감수성이 풍부한 안드레 앤더슨(Andre Andersen)의 키보드와 왼손잡이 기타리스트 제이콥 케이어(Jacob Kjaer)의 기타연주에 굵직한 중저음이 매력인 디씨 쿠퍼의 목소리는 깨지지 않을 완벽한 화합처럼 보였다. 전통적인 서양 클래식 음악에서 차용한 양식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면서도 지나치게 복잡한 곡구성을 피하는 로얄 헌트의 음악에 한두 번 들어서는 그 매력을 알기 힘든 쿠퍼의 목소리는 감히 말하건대 최고의 조합이었다. 미국출신인 디씨 쿠퍼는 이로써 덴마크 출신의 전임 싱어 헨릭 브록만의 그림자를 팬들의 머리에서 완전히 지워버리고 새로운 로얄 헌트 시대를 열었다.
[Fear]에서 디씨 쿠퍼의 자리를 메꾼 존 웨스트는 슈라프넬(Shrapnel) 계열의 여러 테크니션들과 이런 저런 세션들을 통해서 이미 성량을 인정 받아온 인물이었다. 엄청난 음역과 파워를 자랑하는 그의 목소리가 테크닉을 절제하는 로얄 헌트의 음악에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있었지만, [Fear]는 그런 세간의 의문을 모두 날려버릴 만큼 이전 앨범들 못지않은 안정성과 빼어난 작품성을 지니고 있었다. 존 웨스트의 목소리는 심지어 이전 디씨 쿠퍼 시절 로얄 헌트를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만들만큼 밴드와 조화를 이루어냈다.
로얄 헌트의 음악은 이들의 음악성에 비하면 국내의 팬들에게 알려지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내면에는 이들이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다른 밴드들과는 달리 테크닉을 전면에 내세운 밴드가 아니라는 사실이 숨어있다. 기복과 반전보다는 마치 바로크 시절의 클래시컬 음악처럼 지나칠 만큼 악곡 자체에 충실하려는 밴드의 음악은 정직하게 말하자면 한번에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흠잡을데 없이 탄탄한 이들의 음악은 일본을 중심으로 서서히 팬층을 확보해 나가기 시작한다.
한편 이들의 전작 [Fear]는 예전 이들의 앨범에 비해 가장 프로그레시브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이는 새로운 보컬리스트를 받아들여 새롭게 정비한 밴드의 새 출발과 새롭게 바톤을 이어받은 존 웨스트의 보컬 성향을 고려한 밴드의 배려,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음악성의 변화는 이번 신작 [The Mission]을 통해서 다시 밴드의 본래의 원점으로 회귀한 듯 보인다. 이는 헤비메탈/하드록이라는 음악에 있어서 조류라는 의미가 희미해져 버린 현시점에서 상당히 현명한 선택처럼 보인다.
이번 신작에서는 다양한 난이도를 넘나드는 연주가 아닌 기타와 키보드의 화성을 상당히 중시하는 앙드레 앤더슨의 작곡 스타일을 바탕으로 한 곡들이 주를 이루며 연주자의 연주를 따라 가기 보다는 곡의 멜로디를 충실하게 따라서 흐르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The Mission, Surrender, Sweep 등의 곡들은 모두 [Paradox] 시절의 향수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상당히 로얄 헌트적인 느낌이 강한 곡들이다. 안드레 앤더슨의 키보드를 바탕으로 한 밴드의 연주와 자기해석을 자제한 채 약간의 배리에이션 만으로 곡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로얄 헌트 스타일의 편곡 등이 모두 반가움을 준다. 이들의 곡에는 언제 어느 부분에서든 한가지 악기가 리드하는 부분이 없다. 약간의 키보트/기타 솔로 파트를 제외하고는 이들의 음악은 예외 없이 모든 악기들의 하모니가 특별히 두드러지는 부분 없이 곡에 충실한 연주만을 하고 있다. 혹시나 한국적인 상황에서 라디오 방송을 탈지도 모르는 곡으로는 Days Of No Trust를 들 수 있다. 기타 아르페지오를 축으로 부르는 존 웨스트의 목소리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들리는데, 어디서 들어본 듯 만 듯한 친근하고 감성적인 멜로디가 매력적인 곡이다.
1999년이 지난 지금 혹자는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종말이 지구의 종말이 아니라 서양문명의 몰락이라는 해석을 내리기도 한다. 서구의 록음악에 있어서도 조류 중심의 마케팅이 점점 효력을 잃어가고 있는 요즘, 전통 서양음악의 맥에서 밴드의 중심을 찾으려는 로얄 헌트의 노력은 더 그 빛을 발하는 것 같다.
1. Take Off
2. The Mission
3. Exit Gravity
4. Surrender
5. Clean Sweep
6. Judgement Day
7. Metamorphosis
8. World Wide War
9. Dreamline
10. Out Of Reach
11. Fourth Dimension
12. Days Of No Trust
13. Total Rec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