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포스트 록의 신새벽을 여는 밴드 프렌지(Frenzy)가 말 없이 들려주는 9가지 이야기, [Nein Songs]
[Nein : 독어로 ‘No’라는 뜻이며 발음은 영어의 ‘Nine’과 같다.]
Frenzy : n. 광분, 광란 vt.격앙시키다,광포하게하다
2002년 우연히 록페스티벌을 접한 고교 동창생들이 ‘나는 기타, 너는 베이스’ 식으로 프렌지를 시작했다. 유정목(G)과 윤정식(B)이 현재 남아있는 창단 멤버이며 이후 유정목의 친형 유성목(D)이 오랜 재즈드러머의 꿈을 실현코자 무작정 합류했다. 그리고 얼마 전 밴드 루이엠랑 출신의 류호건(G)이 들어오며 현 라인업이 완성됐다.
2008 쌈지사운드페스티벌에 숨은고수로 참가하고 2009년 지산밸리록페스티벌 등의 무대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 튠테이블 무브먼트에 합류했다. 유정목은 로로스, 전자양 등의 세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별도의 커리어를 쌓아왔다.
프렌지의 음악은 넓게 보았을 때 Mogwai, Explosions in the Sky 등으로 대표되는 기타 중심 인스트루먼탈 록의 범주 안에 포함될 수도 있겠으나, 프렌지만의 독창적인 면모는 이들을 결코 쉽게 규정할 수 없도록 한다. 특히 90년대 후반 절정에 달했고 미미하게나마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한국 포스트 록의 맥락에서 이들의 특색은 더욱 두드러진다.
가장 쉽게 드러나는 특징은 마이크로비트의 드럼과 댄서블한 기타 리프가 자아내는 흥겨운 리듬이다. 보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들으면 바로 흥얼거리게 되는 쉽고 편안한 멜로디 역시 포스트 록 밴드로서 프렌지가 가지는 주요한 특징이다. 하지만 프렌지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뽕끼’이다. 앞서 말한 리듬과 멜로디의 요소가 절묘하게 결합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이 뽕끼는 대체로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았던 기존의 포스트 록 밴드들과 프렌지를 명확히 구분해 준다.
모든 게 뒤죽박죽으로 섞인 음악,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연주할 때 즐거운 음악을 이들은 궁극적으로 추구한다. 말 그대로 ‘광란’인 것이다.. 프렌지의 광란, 광란의 프렌지는 『Nein Songs』와 함께 이제 막 시작되었다!
[뜬구름 리뷰 by 9 (그룹 9와 숫자들 리더, 튠테이블 무브먼트 대표)]
‘인상주의 음악’ 혹은 ‘空 음악’
한 폭의 그림 같은 음악이 있다. 여기 『Nein Songs』도 그렇다. 다양한 그림의 갈래 중에서도 『Nein Songs』는 어쩐지 인상주의를 연상시킨다. 인상파를 두고 ‘빛의 화가들’이라고 했던가? 순간의 인상에 색채로써 영원한 숨결을 불어 넣는. 『Nein Songs』를 빼곡히 메우는 그 Sound에는 Frenzy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순간들이 그처럼 아슬아슬하게 새겨져 있는 듯 하다. 클래식의 고리타분함과 모던의 오만함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또한 이 앨범은 인상주의 회화를 닮았다. 새로움을 추구하되 지나친 실험정신에 경도되지 않는다는 Frenzy의 방침(튠테이블 무브먼트의 정체성과도 일맥상통하는)이 잘 드러난 셈이다.
그림은 말이 없다. 다시 말해 좁은 의미의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따라서 찌질한 감정의 토로나 구구절절한 설명도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그림은 어떠한 이야기도 전할 수 없는가?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림에는 언어를 뛰어넘는 언어, 초-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Image다. 우리는 Image를 통해 그림과 ‘열린’ 대화를 나눈다. 정해진 대본대로의 대화가 아니라 계절 따라 기분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말이다. 언어를 통한 대화는 반복될수록 빛이 바래지만, 이미지를 통한 대화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빛을 발한다.
Frenzy와 같은 방식으로 대화에 접근하는 음악이 불친절하고 자기중심적이라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반대다. 대단치도 않은 자신의 일상을 까발리고 사사로운 생각과 감정을 주장하는 음악이야말로 자기중심적이지 않은가? “내 고양이는 귀여워. 오늘은 향긋한 커피를 마셨지.” 따위의 이야기는 지독한 자아도취와 자의식 과잉이 빚어낸 마초적 산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면에서 『Nein Songs』는 살신성인과도 같다. 자신을 주장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이들을 위한 생각과 소통의 장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Frenzy의 음악은 ‘空 음악’이다. 할 말이 없다기 보다는 너무 많아서,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자꾸 변해가서 차라리 침묵을 선택한.
[대중음악평론가 및 음악 동료들의 간략 리뷰]
록 음악은 결국 소리의 문제임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이런 음반을 듣고 있으면, 해가 어스름하게 뜨는 새벽 무렵에 동네 뒷산에 오르며 헤드폰을 끼고 들으면 기분이 그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일찍 일어날 자신도 없고 산에 오르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그냥 방 안에서 소리를 한껏 키워놓고 듣는다. 이래도 기분이 그만이긴 마찬가지다. - 곰사장(‘붕가붕가레코드’ 대표)
예상했던 포스트 록의 전형성과 함께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성이 적절하게 공존하고 있다. 단순히 '절정'만을 위해 ‘발단’과 ‘전개’를 허투로 만들어내지 않는다. 분명하게 그려나가는 서사의 풍경 역시 매혹적이다. - 김학선(웹진 '보다' 편집장)
프리-록 시대의 낭만을 환기시키는 포스트-록 밴드의, 패러독스와 아이러니를 맥놀이하는 기묘한 사운드. - 박은석 (웹진 ‘100Beat.com’ 편집장)
덜 질박한 대신 더 스트레이트 하고 더 모던하다. 빈 자리를 재빨리 꿰차고 앉을 줄 아는 영특한 후발주자. - 서정민갑(대중음악 Activist)
마치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기분... 강약 조절의 절묘함과 연주 기량의 멋진 조합 ! - 성우진(음악평론가, 방송작가)
폭발하는 사운드와 캐치한 멜로디가 공존하는 힘있는 데뷔앨범. 기타 플레이가 형성하는 서정적인 공간감에 주목하게 되는 신인이다. - 차우진(웹진 ‘Weiv’ 편집장)
길고 널찍한 음(音)의 판 위에 부딪힌, 햇빛처럼 부서지는 소리들. 포스트 록의 표현 요소들을 예민하게 활용하는 동시에 상투성의 함정도 지혜롭게 건너뛰고 있다. 주목할 만한 가치가 충분한 흥미로운 데뷔. - 최민우(웹진 ‘Weiv’ 편집장)
프렌지의 공연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다. 벌써 몇 년이나 된 일이지만 에너지가 좋은 팀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앨범을 들어보고 깜짝 놀랐다. 뿜어져 나오던 에너지가 정제되어 오히려 쭉 뻗어나가고 있었다. 앨범에서 이렇게 에너지를 유지하면서 완성도를 높이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이건 분명 프렌지와 앨범을 같이 만든 사람들이 많이 고민을 하고 고생을 한 덕이리라. 쥐었다 폈다 하는 기술이 아주 그냥 능수능란하다. 오랜 고생 끝에 이런 멋진 앨범을 낸 프렌지와 튠테이블에 박수를 보낸다. - 오지은(싱어송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