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수 100% 청카바 로큰롤!
만 4년이다. 자체적으로 발매한 서교그룹사운드의 정규앨범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수록곡이 담긴 첫 번째 미니 앨범이 나온 것이 2008년이었으니 말이다. 야심차게 ‘남자의 목소리’를 내지르며 달렸던 걸출한 신인 로큰롤 밴드가 홍대출신의 수많은 밴드들이 그러했듯 이 고단한 달리기를 소리소문 없이 중도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팬들도 많았다. 비록 앨범의 발매는 여러가지 이유로 늦어졌지만 그들은 클럽 공연이나 크고 작은 음악 페스티벌에 꾸준히 참여하고 자신들의 기존 곡들과 더불어 신곡들도 꾸준히 선보이며 자신들의 정규 앨범이 곧 나올 것임을, 여러가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들만의 로큰롤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왔고 드디어 첫 번째 정규 앨범 <우리들은>을 발표하며 긴 마라톤을 완주하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예전의 음악적인 전통을 현재에 되살려내는 빈티지한 사운드가 밴드의 독특함으로 작용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90년대의 댄스와 발라드조차 복고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정도니, 로큰롤의 가치는 조금 색이 바랜 듯 느껴질 수도 있다. 게다가 서교그룹사운드 말고도 로큰롤을 표방하는 밴드는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련된 멜로디를 추구하는 대신 거칠거칠한 날 것 그대로의 질감을 드러내는 사운드에 그와는 반대로 섬세하게 꼭꼭 눌러 담은 은유적인 가사들을 무심하게 얹어버리는 과감함 그리고 그 두 개의 다른 성질이 서로 엉키며 창출해내는 폭발력은 여타 로큰롤 밴드들과 구분 짓는 그들만의 개성을 창출해낸다.
4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것을 변화하게 했다. 20대 초반이었던 네 명의 멤버들, 김세영(보컬, 기타), 서재웅(베이스), 최욱노(드럼), 김원준(기타)는 이제 20대 중반이 됐고, 추상적이었던 그들의 로큰롤은 보다 구체적인 철학을 갖추게 됐다. 그러면서 20대의 치기나 ‘젊음’을 드러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내지르려고 했던 그들은 ‘로큰롤’이란 사실 ‘어리기’ 때문에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유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자체적으로 발매하고 유통하는 것이 아니라, ‘비트볼뮤직’이라는 레이블을 만나고, 피기비츠의 박열을 공동프로듀서로 영입해 함께 작업을 하면서 서교그룹사운드가 (아마도) 앞으로는 4년보다는 더 짧은 시간 내에 정규 2집도 발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정감을 갖추게 됐다. 지난 앨범의 수록곡 중 녹음이 특히 아쉬웠던 ‘미미레미’, ‘또또송’, ‘그여자네 집’등을 새로운 분위기로 다시 한 번 녹음하면서 그들 특유의 거친 감성을 보다 폭발적으로 터뜨리고, 미니 앨범의 (나름대로) 히트송이자 타이틀이었던 ‘불야성’의 멜로디를 연상시키는 ‘야행성’으로 이번 앨범의 포문을 열면서 4년 동안 로큰롤 음악을 놓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들의 길을 걸어왔던 서교그룹사운드의 굳은 의지를 선보인다. 어디에도 마음을 둘 데 없는 방황의 허우적거림을 몽롱하게 표현하는 ‘농담처럼’은 감정을 끌어 쥐었다가 풀어주었다가 하면서 멜로디를 가지고 놀 줄 알고, 앨범제목이 되어버린 ‘우리들은’역시 기타, 드럼, 베이스 반주가 그 감정의 고저를 맞추어 달렸다가 멈춰서기를 반복하면서 그들이 절제의 미덕을 갖추게 되었음을 엿보게 한다.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의 ‘Tutti-Frutti’는 서교그룹사운드가 라이브 공연을 하면서 한참 관객들의 흥분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꼭 터뜨려준 곡이었고, 역시나 앨범 가장 한 가운데 배치되어 앨범을 순차적으로 들으면 더욱 흥겨움을 배가시켜줄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앨범 중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트랙은 ‘캐롤라이나’일텐데, 그동안 우리가 서교그룹사운드에 기대했던 강렬한 록사운드 대신, 몽글몽글한 컨트리뮤직 스타일을 도입하면서 앨범의 하이라이트를 지나 후반부를 향해간다. 로큰롤 밴드가 잔잔하게 쉼표를 찍어야 한다면 애매한 록발라드가 아니라 이런 종류의 음악을 해야하지 않을까? ‘I feel fine’은 이렇게 나른해진 분위기를 이어가면서도 긴장감을 팽팽하게 놓지 않는 서교 그룹사운드의 몇 되지 않는 잔잔한 트랙이다. 그런 가운데 마지막 ‘그림자놀이’와 짧은 연주트랙 ‘Rocket 57’’에서 징글쟁글하게 흘러나오는 블루지한 사운드를 듣고 나면, 서교그룹사운드가 이번 앨범을 통해 드러내려는 바는 보다 명확해진다. 인간 본연의 ‘결핍’에 관해 시적으로 읊는 이번 앨범 전체의 주제가 결코 흥분을 끌어내고 포효하기 위한 멜로디와 결합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인간 심연의 감정을 읽어내며 깊이를 표현하기 위해 블루지하고 포크적인 멜로디와 결합되고자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 로큰롤은 젊음의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 ‘젊음’이란, ‘청춘’이란 세대를 불문하고, 자신의 자유의지에 대한 본능과 표현의 자세일 뿐, ‘어린 나이에 즐길 수 있는 음악’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가사와 멜로디는 나이를 초월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들의 ‘젊음’으로 남녀노소를 모두 초대한다.
손혜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