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소개 -
씨 없는 수박 김대중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은 블루스 싱어송라이터 김대중의 ‘블루스 이름’이다. 블루스 이름이란 블루스 아티스트들이 갖고 있는 예명 같은 것으로, 관습적으로 신체의 불구를 의미하는 첫 번째 단어+ 과일 이름에서 따 온 두 번째 단어 + 전직 대통령의 이름을 차용한 세 번째 단어로 이뤄져 있다. 그의 경우에는 ‘씨 없는’(불구) + ‘수박’(과일) + ‘김대중’(전직 대통령)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전직 대통령을 의미하는 김대중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그의 본명이라는 점. 애초부터 그와 블루스 사이의 인연은 정해져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인연이 구체적인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했다. 영화 배우, 밴드 매니저, 피자 배달에 이르는 여러 가지 직업을 거치는 동안 아직 블루스는 그에겐 그저 좋아하는 음악이었을 뿐. 그렇게 30대 중반이 된 어느 날, 술을 마시고 카페에서 자기 노래를 한 자락 뽑아 올린 것을 계기로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홍대로 와서 본격적인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갖가지 블루스 스타일 중에서도 평소 좋아하던 1930~40년대의 미국 고전 블루스를 파고드는 한편 거기에 한국의 오래된 포크와 뽕짝의 느낌을 가미하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면서.
이때부터 블루스는 그에게 삶이 되었다. 두 명 밖에 없는 까페부터 50명이 모인 행사장까지 그를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비주류라는 홍대 인디 음악판에서조차 비주류였던 블루스를 지향하는 젊은 아티스트들이 하나 둘씩 등장했고, 그들과 함께 활동하며 그의 이름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에는 인디음반사 붕가붕가레코드가 제작한 블루스 컴필레이션 ‘블루스 더, Blues’에 그의 노래 ‘300/30’을 수록하고 이 노래로 한국 대중음악상 ‘올해의 노래’ 후보에 오르면서 ‘조금 더’ 이름이 알려졌다.
그리하여 2013년, 드디어 첫 번째 정규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다. 그의 블루스 이름과 같은 ‘씨 없는 수박’이라는 타이틀을 단 1집은 때로는 자조 섞인 위트로, 때로는 절절한 신파로, 때로는 따뜻한 로망으로 그의 곡절 많은 삶을 고스란히 담아 낸 김대중식 블루스 앨범이다. 서른 여섯이라는 이르지 않은 나이에 데뷔한 한 블루스맨이 드디어 자신의 길을 찾아 첫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앨범 소개 -
뿌리 없는 삶, 노래하는 블루스맨
씨 없는 수박 김대중 1집 [씨 없는 수박]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은 일단 이름이 블루스다. 전직 대통령과 같은 그의 이름. 적잖은 이들이 당연히 가명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는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엄연한 본명. 전직 대통령 이름을 포함해야 하는 블루스 이름 짓기의 문법에 딱 들어 맞는다. 일종의 모태 블루스라 할 수 있겠다.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은 외모가 블루스다. 좀 더 정확히는 얼굴이 블루스. 크고 굴곡 많고 검은 그의 얼굴은 전설적인 블루스 아티스트인 머디 워터스의 얼굴과 상당히 비슷하다. 아니, 굳이 누구를 딱 지목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블루스맨이다’ 했을 때 머리 속에 떠 올리는 그 얼굴이라 해도 무방하다. 염색체 수준에서 블루스의 우성 인자를 보유하고 있는 셈.
그리고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은 목소리가 블루스다. 깊은 울림에서 느껴지는 터프함, 풍부한 감정 표현이 자아내는 애수, 그리고 능란한 쾌활함에서 나오는 위트가 그의 목소리에는 모두 담겨 있다. 이런 표현력은 삶의 질곡을 때로는 적나라하게 직설적으로, 때로는 유쾌하게 역설적으로 표현해내는 블루스라는 장르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 확실히 그는 비범한 자질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의 음악은 블루스다. 보통 12마디 혹은 16마디 단위로 짜여있는 특유의 코드의 진행이라거나 블루노트를 사용하는 음계, 반복되는 가사 등 블루스의 전형적인 특질을 대부분 갖고 있다. 수많은 갈래로 나뉘는 블루스 중에도 조상님 격인 1930~40년대 블루스의 짙은 영향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블루스의 관습과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노래는 블루스라고 하기엔 포크에 가깝고, 전반적으로 뽕끼가 흐르는 것도 사실. 블루스의 전통에만 매달리지 않고 느낌에 맞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섭취하는 그의 자유로움은, 그래서 블루스다.
블루스의 3위일체이자 천상 블루스맨,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의 1집 [씨 없는 수박]은 이러한 김대중식 블루스의 정수가 담긴 앨범이다. 30대 중반 무렵 늦깎이로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 이래 여태껏 만들어놓은 11곡의 노래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그의 테마곡 ‘씨 없는 수박’으로 시작해서 그가 하는 블루스의 시작점이자 지향점이라는 ‘요양원 블루스’로 끝을 맺는 노래들은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으면서 동시에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를 따라 배열되어 있다. (공연에 오면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들을 수 있다.)
엄청난 사연을 품고 있을 것 같은 테마곡 ‘씨 없는 수박’ / 어버이날 깜짝 선공개되어 수많은 부모님을 울린 발칙한 노래 ‘불효자는 놉니다’ / ‘불효자는 놉니다’와 함께 들으면 병 주고 약 주냐라는 생각이 드는, 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는 ‘틀니 블루스’ / 가사를 따라 날짜를 찬찬히 세다 보면 자연스레 실소가 나오는 ‘어째야 하나’ / 맛 없는 ‘쥬스’의 디테일이 살아 있는 마이너 블루스 ‘수상한 이불’ / 블루스 컴필레이션 앨범 [블루스 더, Blues]에 수록되어 한국 대중음악상 ‘올해의 노래’ 후보에 올랐던 노래를 새롭게 편곡한 ‘300/30’ / 그가 가장 존경하는 아티스트인 머디 워터스에 대한 헌정곡 ‘블루스 투 머디’ / 그의 이름에서 나온 노래로 정치적인 의도는 전혀 없다는 ‘햇볕정책’ / 우연히 본 업소 전단지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돈보다 먼저 사람이 될 게요’ /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노래로 로맨틱하면서도 귀여운 ‘유정천리’ / 그리고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가 자연스럽게 풀어낸 노래를 블루스로 담아낸, 김대중에게는 블루스를 노래하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는 ‘요양원 블루스’. 이처럼 각각의 사연과 이야기를 담은 노래들을 비범한 목소리를 통해 하나씩 차례로 듣고 있자면 그가 얼마나 탁월한 블루스 싱어송라이터이자 이야기꾼인지 확실히 느끼게 된다.
이 노래들을 이렇게 앨범으로 듣는 것도 물론 좋지만 블루스라는 장르의 특성을, 그리고 김대중이라는 인물의 개성을 제대로 느끼려면 그의 공연을 직접 보는 것이 좋다. 이미 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굉장하다는 평가가 자자한 그의 공연은, 앨범 발매를 위해 꽤 오래 쉬는 동안 한결 더 밀도가 높아지고 있다. 5월 25일(토) 1집 발매 기념 공연 ‘김대중 선생님의 입신양명 블루스쇼’이 시작. 텅스텐홀에서 오후 8시부터. 게스트로는 요조와 김간지x하헌진이 출연한다. 그리고 이후 꾸준하게 이어질 그의 공연에 대한 정보는 붕가붕가레코드 홈페이지(www.bgbg.co.kr)를 참조하면 된다.
그의 나이 이제 서른 여섯.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다소 늦은듯한 나이에 씨 없는 수박 김대중은 첫 번째 앨범을 냈다. 적잖은 우회 끝에 겨우 도달한 인연인 만큼, 그가 블루스 음악에 갖고 있는 애정은 정말로 지극하다. 다행인 건 이게 짝사랑이 아니라는 것. 그가 블루스를 사랑하는 만큼 블루스 역시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1집 [씨 없는 수박]은 확실하게 증명해주고 있다.
씨 없는 수박 김대중 1집 [씨 없는 수박]은 붕가붕가레코드 대중음악 시리즈 19번째 작품이다. 프로듀서는 블루스 컴필레이션을 제작한 바 있는 깜악귀(눈뜨고코베인). 녹음은 깜악귀와 나잠 수(쑥고개III 스튜디오)가 맡았고 믹싱과 마스터링은 나잠 수의 솜씨다. 싱글 커버 디자인은 언제나처럼 붕가붕가레코드의 수석 디자이너 김기조가 맡았다, 매니지먼트는 김설화(sh@bgbg.co.kr, 070-7437-5882). 유통은 미러볼뮤직이 진행한다.
글 / 곰사장 (붕가붕가레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