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창궐한 댄스 신은 문화 혁명의 한 단면을 보여준 동시에 많은 것을 앗아갔다. 공익성을 우선한다는 방송은 시청률 위주의 10대만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실상을 더 악화시켰고 가요계의 중견 가수와 팬들은 다 마이너로 전락하였다. 작은 체구로 뛰어난 가창력을 발휘하며 '80년대에 디바의 자리에서 한 순간도 내려온 적이 없는 서니(Sunny: 이선희의 닉네임) 이선희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90년대는 무명 그 자체였으며 발표한 어떤 음악도 팬들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춤을 추지 않는 발라드를 위주로 하는, 더군다나 아줌마의 대열에 선 그녀는 어떠한 노력에도 상관없이 소외당했다.
어린 나이에 남편과 헤어진 그녀가 앨범의 제목에서 풍기듯 자신의 자전적 삶을 노래한 어덜트 뮤직 '이별 소곡'으로 다시 돌아왔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관조적인 자세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거기에서 머물지 않고 거침없이 올라가던 가창력 위주의 곡보다는 성량과 필링을 중요시하는 자세가 되었다. 또한 전혀 비트를 타지 않는 음악을 하던 그녀는 박진영의 사사를 받으며 리듬의 감각을 익혔다. 모두들 배타적인 10대의 시장을 손가락질할 때 그녀는 스스로 자세를 낮추어 음악의 품으로 들어간 것이다.
푸른하늘과 화이트 출신의 음악감독 유영석이 프로듀싱한 앨범의 첫 트랙에 자리잡고 있는 '이별 소곡'은 전형적인 성인 취향의 곡으로 절제미가 드러나는 중저음을 살린 곡이고 박진영이 만들어준 '살아가다 보면'은 그녀의 변신을 빠른 R&B의 매력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곡이다. 김종서 특유의 소녀적 감성이 잘 드러나는 예쁜 멜로디의 '아마'는 이선희 특유의 폭발하는 가창력을 느낌과 호소력으로 예쁘게 담아 내었고 유영석과 함께 해 월드 뮤직 분야에 대해 도전하고 있는 'My Life', '이 노래를 빌려서', '고백', 'Because Of You', 일기예보의 '인형의 꿈'을 재현한 듯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죠' 등 현악기를 담은 포근한 멜로디는 원숙해진 그녀의 목소리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그녀는 이 음반으로 연륜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8집으로 김영동의 작품을 시험하고 10집으로 싱어 송라이터의 기질을 보여준 그녀에게 <그래미>가 U2를 인정한 것처럼 이제 뮤지션의 왕관을 씌워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