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 6집 / 효도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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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정형근
발매일 2011.10.21
제작사 Mirrorball Music
레이블 Mirrorball Music
미디어구분 1CD
Cat.No 8809280164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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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정보 트랙정보 상품후기

쉰 일곱 살짜리 천재의 두 번째 데뷔앨범

정형근의 무기는 바로 이런 것이다. 시시콜콜 너스레를 떠는 것 같지만 단 한 마디도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는 것. 낙차 큰 커브로 글러브 속으로 빨려든다는 것. 30년동안 [예언자]를 읽으면 이렇게 될까? 아름다운 언어를 한국 포크의 절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종종 우리를 멸시한다. 우리의 진짜 삶은 정형근처럼 희비극의 너스레에 불과한지 모른다. 진짜 아름다움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을지 모른다.

1979년에 데뷔해서 소수의 사람들만 몰래 듣던 정형근이 여섯 번째 앨범을 발표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앨범을 듣지 않고 정형근이란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에게 여섯 번째 앨범을 소개해하려니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모니터 위로 단단한 사명감 같은 것이 피어오른다. 쉰 일곱의 나이가 어색하도록 싱싱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쉰 일곱 살짜리 천재

정형근에 대해 직관적으로 이해하려면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의 말을 들어보면 된다. “우리가 지하1층이라면 정형근 형은 지하5층이다” 언더그라운드라고 불렸던 시인과 촌장, 들국화, 따로 또 같이, 김현식같은 80년대 뮤지션들과 어울렸지만 정형근은 그들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었다. 4층 깊이만큼 덜 알려졌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4층 더 깊이 순수하고 자유로운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신이 정형근을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들의 20세기는 정형근의 거침없는 자유를 품어 내기에 너무 딱딱한 시대였다.

“정형근은 언더그라운드의 재야(在野)다.” - 김현식
"이런 음악과 아티스트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 이백천
"어떤 장르와도 무관한 오직 한길로 가는 형근이 형은 바보 아니면 독종이다" - 함춘호
"정형근은 포크음악의 새로운 생태학을 알리는 시작이다." - 이주원
"그는 우리시대 최고의 음유시인이며 그의 음악을 듣고 보는 순간, 첫 경험의 충격을 받을 것이다" - 전인권

정형근의 음악이 과연 어떻길래 호들갑이냐고 한다면 거두절미하고 ‘40억년 후에’를 들어보라고 권한다. 손진태가 사운드 디렉팅을 맡았던 두 번째 앨범 [나는 당신의 바보](1996)에 수록된 곡이다. 시장 좌판의 파란 산나물들을 보며 지구의 멸망을 떠올리는 상상력은 초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감동을 준다. “큰 딸은 탁구를 작은 딸은 양궁을 시키려 했다”(‘아내와 나의 소설’)같은 가사에서 묻어나는 유머스러움과 8월의 해운대에서 들어도 펑펑 울게 만드는 ‘하나님’같은 노래들은 전에 없던 독특한 개성이었다. 툭툭 내뱉는 주문 같은 목소리로 사람의 감정을 전혀 다른 것으로 뒤바꿔 놓는다. 아마도 이건 타고 난 재능이거나 오랜 수련으로 갈고 닦아진 능력일 것이다. 천재라는 단어가 약관의 나이에게만 허용된 것이 아니라면 나는 그를 천재라고 부르고 싶다.

강원도 춘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정형근은 교동교회를 다니며 민중 신학의 영향을 받았고 주변 미군부대 사병클럽들을 몰래 드나들며 음악의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기타 한 대를 들고 CBS 김진성 PD를 찾아 갔다. 당시 포크 음악을 하고 싶은 청년들은 죄다 그렇게 했다. 김진성은 청년들을 세상과 연결시켜주는 문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정형근은 김진성을 통해 1979년 CBS ‘세븐틴’과 ‘꿈과 음악 사이’라는 프로그램에 데뷔 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10대 문화가 막 싹을 틔우던 미디어 환경에서 정형근은 너무 순수했고 위험하게 자유스러웠으며 때때로 철학적이었다. 언더그라운드와 어울린 것은 당연한 숙명이었다. 80년대 초반엔 들국화, 시인과 촌장, 이주원과 김현식을 만나 공연을 다녔고 80년대 후반엔 이소라, 김정렬같은 인천 포크라인 애들(?)을 데리고 춘천으로 MT를 다녔다. 1987년이 되어서야 데뷔앨범 [호수에 던진 돌]을 발표한다. 동아뮤직 전성기에 발표된 이 앨범은 노영심이 첫 번째 세션을 한 앨범으로도 유명하다. 90년대는 80년대보다 더 각박했다. 하지만 정형근은 거친 파고를 견뎌 내며 묵묵히 ‘40억년 후에’같은 곡들을 발표했다. 김진성은 정형근을 아직도 자신의 검은 말이라고 부른다. 30년 넘도록 봄이면 함께 춘천으로 막국수를 먹으러 다니고 가을이면 일산 전집에 앉아 막걸리를 나누어 마시며 말한다. “너의 음악을 품어주는 시대가 오겠지”

클럽 빵에서 시작된 두 번째 데뷔 앨범
내 생각엔 지금이 그런 시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인디라 불리든 언더그라운드라 불리든 다양한 음악적 지평을 열고 있는 지금이라면 지하5층짜리 정형근을 품어낼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정형근의 매력에 감동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앨범 [효도탕]은 2010년 9월 19일 홍대 클럽 빵에서 시작되었다. 스무 살 어린 음악평론가와 알게 된 정형근은 우연한 기회에 빵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고 한음파, 옆집남자와 함께 선 무대에서 큰 감흥을 얻었다. 셍떽쥐베리처럼 공상하며 견뎌온 8, 90년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느낀 것이다. 이후 정형근은 왕성한 창작력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가사를 썼고, 내일이 오기 전에 곡을 붙였다. 이 앨범의 수록곡 대부분은 2010년 9월 19일 빵공연 이후에 씌여진 것이다. 본인조차도 이상한 에너지가 샘솟았다고 말한다. 고즈넉했던 지난 앨범들과 다른 기운이 그를 사로잡았다.

사실 정형근은 2009년 다섯 번째 앨범 [예언자]를 발표하고서 자신의 음악인생을 갈무리했다고 생각했다. 칼리 지브란의 잠언집 [예언자]는 그가 음악을 시작하도록 만든 계기였고 30여년간 고집스럽게 음악을 붙들게 했던 이유였다. 대장경을 새기 듯 머리에 백번, 가슴에 천 번 새긴 글귀를 자신의 언어로 체화하여 스물 여섯 곡을 담았다. 평생의 과업을 수행하고 나니 초로의 나이가 되어 버렸다. 음악은 물론 인생에서도 후반부를 준비할 나이인데 홍대 클럽 무대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이 앨범은 정형근의 또 다른 데뷔 앨범이다. 인생의 후반부에 다시 청년으로 돌아간, 아니 언제나 우리 안에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웅크리기만 하는 청년을 다시 끄집어내 광장 위에 세운 앨범이다.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자위
물론 나이를 숨길 순 없다. 죽음에 대해 각오가 되어 있다고 시작하는 ‘나의 각오’에는 아이들은 부쩍 크고 아내는 돋보기를 쓰고 청춘도 영혼도 육체도 다 쑤시고 아프다며 삶을 돌아본다. ‘엄마의 가슴으로 돌아갑니다’ 와 타이틀곡 ‘효도탕’을 포함해서 초로의 공간에서 돌아보는 지난 삶과, 죽음에 대한 전망이 이 앨범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곡들에서 조차 정형근은 청년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 “죽도록 사랑하자. 죽도록 사랑하다 죽자”는 ‘나의 각오’의 핵심 문장은 죽음이 먼 일인양 말한다. 정형근의 청년은 매 곡마다 포진되어 있는 개구쟁이같은 가사에서 커다란 힘을 발휘한다. 웃음의 페이소스를 통해 삶의 진실을 지긋이 보여준다. 그래서 최고의 트랙은 단연 [효도탕]이다. “아버지 돌아가시는 날 나는 철학적으로 울었다. 엄마가 돌아가시면 돼지처럼 울 것 같다.”는 노랫말 안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정형근은 종종 헤밍웨이를 말하곤 하는데, 급박한 단문들 사이 행간에 소설 한 권씩 들어 있는 것 같다며 좋아한다. 저 가사 행간에서도 두꺼운 책 한 권이 들어 있지 않은가? 여기에 맞춰 이용운이 와와 페달로 한땀한땀 수놓아 만든 기타 백킹은 형식적으로도 완벽하다.

정형근의 무기는 바로 이런 것이다. 시시콜콜 너스레를 떠는 것 같지만 단 한 마디도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는 것. 낙차 큰 커브로 글러브 속으로 빨려든다는 것. 30년동안 예언자를 읽으면 이렇게 될까? 아름다운 언어를 한국 포크의 절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종종 우리를 멸시한다. 우리의 진짜 삶은 정형근처럼 희비극의 너스레에 불과한지 모른다. 진짜 아름다움은 그다지 아름답지 않을지 모른다.

그런 아름다움만이 삶의 복합적인 에너지를 드러낸다. 그래서 이 앨범의 대부분은 생명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첫 번째 트랙 ‘Sexing’이 탄성 넘치는 그런지 스타일인 이유가 해명된다. 섹스가 욕망과 희망을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하는 ‘Sexing’의 직유법들. 지렁이처럼, 뱀처럼, 사과처럼, 딸기처럼, 수박처럼 섹스 하라는 종용은 그야말로 역사적이다. 여전히 교회 의자처럼 딱딱한 한국 사회에서는 가뭄의 소낙비처럼 통쾌하기가 이루 말 할 수 없다. 정형근은 그 어떤 청춘보다 젊다는 것을 증명한다. 카드빛 천 만원을 남기고 떠나간 연인에게 딱 한 대만 맞고 가라고(‘딱 한 대 맞고 가’) 말하고 얼굴이 미끼면 말빨은 낚시라고, 얼굴도 말빨도 안되면 상상력을 동원하라고 (‘아가씨 새벽은 아직 멀었어’) 작업 코치를 자처하기도 한다.

정형근 음악의 또 다른 한 축은 올바른 시각으로 담아내는 사회풍자적 노래들이다. 세 번째 앨범 [한 송이 들꽃으로](2003)에 특히 그런 곡들이 많았다. 한국 포크는 민중가요라는 이름으로 현실 비판의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21세기 민중가요들이 와인 마시며 부르는 후일담으로 변질되거나 지나치게 실용적인 가사들로 국한한 아쉬운 역사도 가지고 있다. 이 앨범의 ‘까꿍 대한민국’은 그런 안타까움을 보완한다. 신랄하면서도 유쾌한 대중가요의 풍자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앨범 전반부에서 확인한 지하5층의 따뜻한 현실감각, 청년의 에너지가 배경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까꿍 대한민국’이 대중적인 풍자 노래라면 마지막곡 ‘자위’는 풍자와 예술적 상상력이 결합된 노래다. 정형근 특유의 희비극적 아름다움과 따뜻한 현실감각, 신랄한 현실비판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8분이 넘는 러닝타임 내내 자위하라고 권하는 가사인데 이상하게도 숙연한 기분이 든다. 묘하다. 터부시된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데 숙연해지고 숭고해지기까지 하다니, 그런 기분이 드는 자신이 정말 맞는 것인지 낯설어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이켜보게까지 만든다. 그렇게 몇 번씩 반복해 듣다가 하늘을 올려다보면, 파란 가을하늘이건 비를 머금은 먹구름이건 희미한 깨달음 같은 것을 얻게 된다. 혹시 정형근이 말하는 자위란 삶과 죽음이라는 형이상학 사이에 위태롭게 서 있는 ‘생활’이 아닐까? 때때로 기쁘지만 대부분 슬픈 삶. 철학적 죽음이 아니라 돼지같이 울 것 같은 죽음. 밥 딜런이 거기에 없었다고 말했던 것. 누구나 드러내고 싶지만 누구도 드러내지 못했던 진실. 아주 붉은 파랑새같은 것 말이다. 감은 잡히지만 도무지 희미해서 나는 정형근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데체 ‘자위’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작자의 의도가 궁금했다.

나 : 선생님 ‘자위’ 좋더라구요. 좋긴 좋은데 ‘자위’의 의미가 불명확해요. 어디에선 자위를 하라고 하고 다른 구절에서는 자위를 하지 말라고 하고, 좀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요. 개인들의 아픔인 것 같기도 하고 역사적인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어떤 생각으로 쓰신 거예요? 자위는 어떤 상징인가요?

정형근 : 나도 몰라. 내가 그걸 알았으면 뭐라고 썼겠지.

- 글 l 전자인형 (웹진 음악취향Y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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